임용운 시인, 서예가, 전 교장
공부를 잘하려면 독해력이 뛰어나야 한다.
공부라는 일 자체가 자료를 해석하고 그 가운데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거나 새로운 지식을 구성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시험을 보더라도 주어진 지문을 잘 이해했을 때 다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국어 시험이나 대학수학능력 시험 등 모두 많은 양의 지문을 읽고 나서 그 가운데 들어 있는 내용을 파악하거나 그 내용을 중심으로 추론하도록 문제가 제시된다.
그래서 국어를 잘하는 아이는 공부를 잘하며, 다른 공부는 일정 기간에 집중적으로 할 수 있지만 국어만은 어릴 때부터 꾸준히 길러 온 실력 이상 향상되지 못한다. 얼마 전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수능 수험생들이 “비문학 지문 길어서 풀다 지쳤다. 시간이 부족해서 다 못 풀고 찍었다”는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었다. 우리 교육현실에서 독해력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교육평론가 이범은 <우리 교육 100문 100답>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려면 독해력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그러기 위해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초, 중학교 시절에 책을 많이 읽은 학생이 결정적 시기에 높은 학습 성취를 보인다는 것이다.
독해력은 어휘력과 관련이 깊다. 많은 어휘를 알고 있어야 하고, 어휘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공부 또는 학문의 대부분이 어휘의 습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려운 개념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관련 어휘를 이해하고 그런 어휘들을 조합해서 정의를 내리는 것이므로 어휘력의 정도가 학력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해하고 있는 어휘의 질도 중요하다. ‘지하철’이라는 하나의 어휘라 할지라도 대도시 아이들이 인지하고 있는 ‘지하철’의 의미와 시골 아이들이 생각하는 ’지하철‘의 의미에 차이가 있다. ’소‘라는 어휘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소‘는 고기를 먹기 위해 기르는 동물로 인식하지만 어른들이 생각하는 ’소‘는 수레를 끌거나 밭을 가는 집안의 재산으로 인식하는 경우이다. 이처럼 어휘에 대한 인식이 학습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경험은 많이 하지만 경험을 잘 소화하여 공부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언어 능력의 차이가 경험을 소화하는 능력의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언어 능력 즉 독해력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경험을 쌓아도 조금밖에 소화하지 못하며 언어능력이 뛰어나면 작은 경험일지라도 깊이 보고 느끼며 되새김질하면서 여러 가지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이은경, 남궁은은 <한자력>에서 주장하고 있다.
자녀들에게 어휘력을 확장시켜 주고 독해력을 길러주는 일이 공부를 잘하는 기초를 마련해 주는 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 독해력 기르기의 주요 장면은 국어 학습이어야 한다. 국어시간에 공부한 내용들이 독해의 기초 기능이 된다. 그래서 국어 수업을 독해력을 기르는 좋은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학교에서 배운 교과서를 여러 번 읽고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도록 하면 좋다. 부모와 아이가 같은 글을 읽고 질문을 만들어 질문하고 대답하는 활동을 하면 독해력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된다.
국어 교과서뿐만 아니라 동화책도 부모와 함께 읽고 질문 만들어 질문 주고받기를 한다.
국어사전을 가까이한다.
글 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시인이나 소설가들은 두꺼운 국어사전을 손으로 몇 번이고 베끼면서 어휘력을 익힌다고 한다.
어려운 낱말이나 재미있는 낱말들은 사전에서 찾도록 한다. 전자사전보다 책자로 된 사전이 좋다. 수시로 찾을 수 있음은 물론 하나의 낱말을 찾으면서 다른 낱말도 함께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낱말과 관련되는 비슷한 말, 반대말, 유사어, 동음이의서, 관련 사자성어 등을 함께 알아보도록 한다.
어휘력은 처음에는 습득이 어렵지만 알아 가면 갈수록 재미를 느끼게 되면 확장 속도가 빨라진다.
글 쓰는 기회를 많이 갖도록 한다.
독후감을 쓰거나 일기를 쓰게 한다. 글짓기 하는 것처럼 일정 분량의 글을 1주일에 1, 2편을 쓰게 하는 등 일정 기간을 정하여 의무적으로 쓰는 습관을 길러준다.
책을 읽을 때 메모하는 습관을 들인다.
좋은 문장이나 문구를 그대로 발췌하여 메모하면 좋다. 물론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함께 쓰는 것도 좋다.
이러한 활동들이 학력 향상에 많은 노력이 소요되고 더디게 공부가 되는 것 같지만 공부의 기초체력이 되어 대학에 진학할 무렵이 되면 아주 크게 힘을 발휘하게 된다.
독해력이 인생을 좌우한다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다. 학생 시절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서도 독해력은 필수적인 역량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