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시인
산과 들에, 또는 자주 다니는 길가에서 피어나 있는 여러 종류의 이름 모를 꽃들, 너무 작아서 눈에 잘 띄지도 않고, 별로 화려하지도 않기에 무심히 지나쳐버렸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발로 짖밟고 지나치기 일쑤였던 꽃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꽃들의 존재 조차도 모르고 살았다.
그렇게 철따라 피고지는 꽃들의 질긴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40대 중반이 되어서야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저마다의 습성과 생태 환경에 적응하며 크고 작게 피어나는 꽃들의 새로운 아름다움도 느끼게 되었다.
“아-자연이란, 생명이란 이리도 아름답고 경이로운 것이구나!”
그런 감동때문에 새로운 눈으로 자연을 접하면서 살아 온지가 또 어언 20여년이 흘렀다.
60대 중반이 되고 보니 이제는 아름답고 화려하게 피어있는 꽃만 보이는 게 아니라, 처참하고 추한 모습으로 지는 꽃까지 보게 된다.
모든 꽃들이 질 때는 봉오리부터 만개했을 때 까지의 화려함에 반해 너무도 초라하고 추하게 시든다. 그 모습이 싫어서인지? 목련이나 동백 같은 통꽃들은 아예 순식간에 뚝 떨어져버린다.
그토록 처참하고 추하게 지는 꽃들을 보면서 나는 또 하나의 장엄하고도 숭고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꽃이, 아름답고 화려한 꽃들이 영원하지 않고 금방 시든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 것은 우주적 순환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며, 또 다른 오늘이 될 내일을 위한 준비과정인 것이다.
그래서 추하게 지는 꽃 또한 화려하게 피어있는 꽃만큼이나 아름다운 모습일 수도 있다. 어쩌면 더 아름다운 모습일 수도 있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 중략 -
꽃이 지는 소리 하도 하늘어
귀 기울여 듣기도 조심스러라
- 중략 -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싶어라.
- 조지훈 낙화 중에서 -
꽃이 피었다 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임을 표현 한 시인의 세계관이다.
그런 달관(達觀)의 세계관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지는 꽃을 바라보면 눈물이날까?
화개작야우(花開昨夜雨)화락금조풍(花落今朝風)
어제 밤 비에 꽃이 피더니 그 꽃잎 오늘 아침 바람에 떨어진다
이 또한 지는 꽃을 바라보는 시인의 가슴에 저며오는 삶의 덧없음이다.
그래서 화무십일홍(化無十日紅:십일을 붉게 피는 꽃이 없다.)이며, 달도 차면 기운다. 했던가?
세상 어머니들의 삶이 다 그러하듯이 필자의 어머니 또한 한 송이 꽃으로 피었다가, 이제는 말라비틀어진 볼품 없는 꽃으로 떨어질 시간을 준비하고 계신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6,25 전쟁과 ‘비내리는 고모령’, ‘울고 넘는 박달재’, 구비구비 한이 서린 ‘추풍령 고개’보다 더 팍팍한 춘궁기의 지난한 ‘보릿고개’를 수도 없이 넘고 넘으면서도 그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여덟남매를 낳아 기르신 어머니.
그 90년 세월의 꽃 한 송이가 이제는 떨어지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낙화 직전의 어머니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피어있는 꽃의 아름다움을 뛰어넘어 지는 꽃의 숭고하고 장엄함을!
낙화(落花)
- 90년 세월의 꽃, 어머니 -
그토록 처절하게,
한 여름 찬바람(中風)에 떨어지신 까닭은
아름다웠던 기억들만 간직하라는
당신의 뜻입니까?
작은 꽃씨 몇 톨 이렇게 남기신 까닭은
“너무 아파하진 말아라.
이제는 너희들의 계절로 피어나라”는
당신의 마음입니까?
면회도 안된디는 중환자실에 홀로 누위서
반쪽도 남지 않은 뇌로 어머니는 지금 무순생각을 하고 계실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