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자녀(1)
독신으로 살다 간 철학자들이 더러 있긴 하지만, 그리 많지는 않다. 대개의 철학자들이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또한 그들 때문에 기뻐하기도 하고, 가슴 아파하기도 했다. 그런데 자녀에 대해 특이한 입장을 취했던 철학자들이 있다.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탈레스(기원전 6세기)는 일식(日蝕-태양이 달에 의해 가려지는 현상)을 예언하였으며, 기하학을 이용하여 피라미드의 높이를 측정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결혼시키려 하자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한다. “아직 결혼할 시기가 아닙니다.
그 후, 나이가 들어 그의 어머니가 결혼을 하라고 더욱 재촉하자 또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제는 결혼할 시기가 지났습니다.이에 “왜 (결혼하여) 자식을 낳으려고 하지 않느냐?고 묻자, 이에 대한 대답은 더욱 의미가 깊다. 자식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선문답 같기도 한 이 말속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사실 갓 태어난 아기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기쁘면서도 다른 한편 걱정이 앞선다. 과연 이 험난한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혹시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지나 않을까? 자라는 도중 나쁜 길로 빠지지나 않을까?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며 여러 자식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경우도 있지만,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자식들 때문에 고통당하는 부모도 부지기수이다. 오죽했으면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속담이 생겼을까? 차라리 자녀가 없다면, 근심걱정할 일도 그만큼 줄어든다. 고생고생하며 애써 돈 벌 필요도 없다. 내 한 입 해결하면 끝난다. 한 세상 편하게 살다가 세상 하직하는 날, 훌쩍 떠나면 된다.
그러기에 탈레스가 ‘사랑 때문에’ 자식을 낳지 않겠다는 말 속에도 일리는 있다. 물론 다른 설도 있긴 하다. 탈레스가 결혼하여 ‘큐비스토스’라는 아들을 얻었다거나 결혼하지 않은 채 삶을 마감한 건 사실이지만 누이 동생의 아들을 양자로 삼았다는 설 등.
철학자 플로티노스는 또 다른 이유로 자식이 없었는데, 우선 그는 자신이 육체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몹시 부끄러워 하였다. 그 때문에 자신의 출생, 부모, 고향에 대해 한 번도 말해 본 적이 없고, 영혼이 육체에 들어온 날인 생일조차도 비밀로 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에게는 ‘심히 유감스러운 사건’, 즉 생일을 축하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는 또한 자신의 초상화를 절대 그리지 못하게 하였다. 그 까닭에 대해 플로티노스는 “육체는 그림자에 불과하므로, 초상화란 기껏 그림자의 그림자일 뿐이다. 그만큼 하찮은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제자 아멜리오스는 친구인 화가를 강의실에 몰래 들여보내 스승의 모습을 기억시킨 다음, 다른 장소에서 초상화를 그리게 하였다고 한다.
육체를 극도로 멸시한 플로티노스는 병에 걸려도 약 먹기를 거부하였고, 위경련이 일어났을 때도 위 세척을 거절하였다. 음식의 양을 너무 많이 줄였고, 준비해둔 빵 한 조각을 먹는 것조차 자주 잊어버렸다. 불면증까지 얻게 된 플로티노스는 앓아누운 채 야위어 갔다. 나이가 들어서는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으며, 손발이 곪아 터지기 시작했다.
플로티노스가 이처럼 육체를 학대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에 의하면, 물질에 해당하는 육체는 영혼에 비해 한없이 낮고 비천한 것, 극복해야 할 어떤 것이다. 그러므로 무가치한 육체를 위해 먹고 마시는 일, 생일을 기념하는 일, 육체를 그려 보관하는 일 등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플로티노스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따라서 당연히 자식도 없었다. (영광백수 출신, 광주교대 명예교수, 철학박사, 유튜브 ‘강성률 철학 티비’ 운영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