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자녀(3)
아무리 악독한 인간일지라도 자녀에게는 선으로 대하고, 역사상 아무리 잔인한 독재자라도 자식들에게만큼은 관대하게 행동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 간주하여 대개는 너그럽게 보아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자녀들에 대해 독하게 처신했던 철학자들이 있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프랑스의 철학자 루소이다. 어머니를 여의고 끊임없이 모성애를 동경하던 루소는 드 바렝 부인을 만나 마음의 위로를 얻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바람기를 잠재우지 못한 채, 루소의 곁을 떠나가고 말았다. 다음으로 루소는 베네치아(이탈리아)의 매춘부와 난잡스런 관계를 맺는다. 그 후 프랑스 파리의 하숙집에서 세탁부로 일하는 한 처녀를 만나는데, 두 사람은 23년간의 동거 끝에 마침내 결혼한다. 두 사람 사이에는 다섯 명의 아이들이 차례로 태어났지만, 루소는 이들을 모두 고아원에 보내버린다. 그 이유는 ‘자식들이 너무 소란스러운 데다, 양육비가 많이 들기’ 때문이었다.
과연 루소가 누구인가? 그가『에밀』을 펴냈을 때, 프랑스의 어머니들은 이 책을 아이들 교육의 바이블(성경)로 삼았다. 따라서 이처럼 영향력 있는 저자가 자녀를 고아원에 맡긴 일은 큰 모순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어머니의 이른 죽음으로 인해 루소는 아버지와 고모의 손에 의해 양육되었다. 그의 아버지는『플루타르코스 영웅전』과 같은 소설들을 읽혀 그를 교육하려고 하였다. 그나마 아버지와의 생활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퇴역한 프랑스 대위와 싸움을 한 후 처벌을 피해 제네바(스위스 제 2의 도시)를 떠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린 루소는 외삼촌에게 맡겨졌다가 다시 한 목사의 집으로 보내진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생활도 길지는 않았다. 어느 날, 목사의 여동생이 아끼던 빗이 부러진 채 발견되자 그 가족들은 루소를 범인으로 몰아갔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루소는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결백을 믿어주지 않는 상황 속에서 다시 제네바로 돌아온 루소는 재판소 서기 밑에서 필사(筆寫, 베껴 쓰는 일) 견습공을 하기도 하고, 한 조각가의 집에 들어가 도제(徒弟, 스승의 밑에서 일하는 직공) 일을 맡기도 한다. 그런데 이 조각가는 사정없이 그를 구타해댔고, 루소는 그 집에서 아스파라가스(고급 채소)라든가 사과 같은 것을 훔쳐 먹는 것으로 앙갚음을 한다. 또 이무렵 루소는 돈을 몽땅 털어 책을 빌려보곤 했는데, 주인은 책만 보면 빼앗아 불태워버리곤 하였다. 그 사이 니옹(제네바에서 북동쪽으로 25km 떨어진 도시)으로 도망간 아버지는 53세의 나이로 재혼을 한다. 14살의 루소는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 아버지와 아들은 이후 서로 만나지 않는다. 아버지로부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본인 또한 그러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기이한 운명은 루소가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 원천이기도 했다.
본래의 이야기로 돌아가, 당시 파리에서 공립 고아원에 아이를 맡기는 것은 일종의 관행이기도 했다. 신생아(新生兒)의 3분의 1 아이들이 이에 해당하였다. 그럼에도 루소가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내버린 일은 충격적인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그런지, 훗날 루소는 이에 대한 죄책감과 변명을 곳곳에 남기고 있다. “가난한 일도, 체면도 자식을 키우고 직접 교육시키는 일로부터 그를 면제시켜 줄 수는 없다. 그토록 신성한 의무를 저버리는 자에게 예언하건대,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잘못에 대해 통한의 눈물을 쏟게 될 것이다.” (『에밀』) (영광백수 출신, 광주교대 명예교수, 철학박사, 유튜브 ‘강성률 철학 티비’ 운영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