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사진가
현 정부와 같이 출발한 것이 있다면 대다수 국민의 답답 증세다. 국민을 위한 정책은 사라지고 온통 다툼과 정쟁으로 나라가 홍역을 앓고 있다. 가장 중요한 대통령은 보이지 않고 모든 미디어는 대통령의 부인을 조명하고 있다. 평생 처음 접하는 기이한 현상과 논란성 국정의 의혹이 가르치는 곳은 한결같이 영부인이기 때문이다. 흔히 영부인은 대통령의 령(領)자를 따서 쓰는 거로 착각을 하지만 전혀 다른 말이다. 영부인은 영(令)자를 사용한다. 다시 말해 어느 단체 우두머리의 아내라는 뜻이다. 그래서 본인에게 주어진 어떠한 직위도 없다. 사전적 의미는 ‘지체 높은 사람의 부인’이다. 여기서 다시 알아야 할 것은 ‘부인’이라는 칭호다. 며칠 전 방송에서 자신의 아내를 부인이라고 칭하는 유명인을 보았다. 우리 정서에서 자신을 스스로 높이는 사람은 없으니 무지에서 나왔으리라 생각하지만, 변명의 여지는 없다. 우리 말에서 사용하는 단어의 8할이 한자라는 사실은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자 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결과는 아이들 독해력의 현저한 저하다. 한자를 보지 않으면 해독이 어려운 단어가 너무나 많지만, 언제부터인지 시나브로 한자 교육이 사라지고 있다. 영부인은 부인(夫人)을 쓴다. 여기서 부(夫)는 지아비이니 남편이다. 그래서 지아비의 사람이 부인(夫人)이다. 영부인에 쓰이는 이유이다. 결국, 방송에 나왔던 유명인은 자신의 아내를 ‘지체 높은 사람의 부인’으로 소개한 셈이다. 그러면 다시 여기서 부인(婦人)을 알아야 한다. 결혼한 사람을 일컫는 보통 명사지만 일반적으로 남의 아내를 이르는 말이다. 며느리라는 뜻도 있지만 현대에는 아내라는 의미로 많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내를 부인이라 칭하는 건 맞지 않지만 한자 해석이 따르지 않으면 이해가 힘들다. 여기서 현재 대통령의 부인이 왜 영부인이라는 칭호 사용을 거부했는지 답이 나온다. 영적인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겐 항상 서열이 있으며 이는 사회적 지위로 바뀌지 않는다. 그에게 지체 높은 사람의 부인 자리는 절대적인 굴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권력 서열을 보면 답은 쉽게 풀린다. 자신은 국가를 뜻하는 령(領)이고 오히려 남편은 영부인(令婦人)이 되어야 한다. 그의 과거 행동과 최근의 광폭 행보를 보면 정확하게 이해가 될 것이다. 이를 우리는 비선(非選) 즉, 국민이 뽑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본인은 국민이 선택한 최고 권위의 실세를 만든 당사자이니 행동에 거침이 없고 막힘이 없으며 모든 이하 권력은 자신의 지시하에 움직여야 한다는 ‘당연’한 생각으로 광폭 행보를 멈추지 않는다. 또한 “할 줄 아는 게 없는 부족한 사람”을 위해서 대신 국가를 다스리고 지도하며 봉사와 희생을 아끼지 않는다. 이미 이런 행위가 당연하게 느껴지는 위대한 영도자가 되어 있는 자신이 너무 대견하다. 어쩌면 차기에선 본인이 정식으로 대권에 도전해 보고 싶은 의지를 싹틔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정작 본인은 현재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는 비선 실세라는 큰 과오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라 살림과 모든 국가 시스템은 집권 2년 6개월 만에 처절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지만 정작 자신들은 의미도 결과도 이익도 없는 해외로 나돌며 대통령 놀이만 즐기고 있다. 여사(女史)의 원래 뜻이 후궁을 섬기며 기록과 문서를 관리하던 여자 사관이라는 걸 알았던지 칭호를 사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적당한 호칭이 떠오르지 않는 ‘대통령의 아내’가 걸어갈 앞길이 훤히 예상되지만, 누구도 함부로 말하지 못하는 답답함을 긍정적 호의로 생각하는 단순함에서 오히려 인간적 연민을 느끼는 게 나 뿐일까. 예정된 추락의 아픔을 어찌 감당할 것인지. 다음에는 추천 책이나 읽으며 가을 정취로 마음을 다스려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