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 사진가
전국의 관심을 끌었던 영광군 재보궐 선거가 짧고 굵게 끝났다. 장세일 당선자에겐 축하를 낙선자에겐 심심한 위로의 말을 드린다. 당선인은 영광을 위한 정치를, 아쉽게 낙선한 후보는 통 큰 협조가 필요한 시기다. 진보당 후보는 한계를 드러냈고 조국혁신당 후보는 탈당부터 낙선까지 음해와 네거티브로 스스로 무너지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념보다 무서운 게 선거판의 정적이라고 한다. 실제 조그만 마을의 이장 선거에서 마을이 두 쪽이 나고 고소 고발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선거판에서 싸웠던 상대는 이미 화해의 대상이 아니다. 각종 음해성 글과 확실하지 않은 네거티브 공격으로 서로는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영광처럼 좁은 지역 사회에선 더욱 큰 상처로 남아 가족과 가까운 친구까지 척을 지고 만다. 그리고 과거 이명박 정권에서 만들어졌던 성명 나열식이 아닌 지방 특성의 편짜기식 명단 없는 블랙리스트가 자연스럽게 형성이 된다. 이를 바라보는 일반 군민은 불편하지만, 당사자는 어느 정도 합리성과 스스로 타협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당선인은 다를 거라는 기대를 해본다. 억지로라도 대인배가 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 지역에 절실히 필요한 게 있다면 화합과 화해다. 좋지 않은 일로 전 군수가 낙마하면서 영광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말썽은 행정에 대한 강한 불신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품어 안고 화합의 길로 가는 대인배가 되어 보자. 그리고 낙선 후보 역시 협조라는 덕을 발휘해 보자. 자신의 부족으로 낙선했음을 인정하면 된다. 낙선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건 자신에게 주는 회피성 핑계일 뿐이다. 책임을 밖으로 돌리는 행위는 적어도 군수 출마자의 품격은 아니다. 스스로 소인배가 될 필요는 없다. 경선자는 적이 아니라 끝까지 같이 가야 하는 고향의 선후배라는 것 또한 깊이 새기고 협조와 화합으로 지역의 상처를 봉합해 나가야 할 것이다. 편향적 편 가르기는 배척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폐단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 대한민국 문화계의 블랙리스트가 다시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소위 보수라고 자칭하는 정권이 블랙리스트로 지정해주지 않으면 세계 무대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묘한 흐름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카데미 영화제를 선두로 칸 영화제와 노벨 문학상 수상까지 줄줄이 블랙리스트 문화인들이니 틀린 주장은 아니다. 이명박과 박근혜에게 수상의 감사를 드리기라도 해야 할 모양이다. 이들의 행태는 너무 치졸해서 말로 표현이 힘들다. 과거 김대중 선생이 사형 선고까지 받아가며 민주화 운동에 평생을 바쳐 수상한 노벨 평화상을 각종 음해로 폄훼했고, 일부 민족혼을 상실한 사람들은 스위스 노벨 본사 건물 앞에서 평화상 취소 시위를 벌이기도 했던 기억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한다. 문제는 이번 한강 작가의 아시아 여성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서도 이런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장력이 부족하다는 평을 하는 사람, 역사를 왜곡해서 상을 탔다는 사람, 출판사의 로비로 상을 받았다는 등 다양한 의견이 커뮤니티에 올라오고 있다. 특이한 것은 이들이 대부분 자칭 보수라는 사람들이다. 세계 속의 문화예술인들에게 블랙리스트라는 멍에를 씌우고 활동에 제약을 가했던 정부에서 나름의 특권을 누리며 활약했던 부류들이라는 이야기다. 상대의 손을 묶어 놓고 권투를 했는데 무참히 깨지니 자신에게 던지는 처참한 합리화인 셈이다. 이들 정권과 부역했던 문화인들의 공통점은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것이다.
갑자기 터진 노벨 문학상 소식에 급히 한강 작가의 대표작 서너 권을 정상적으로 주문했지만, 배송이 지연되고 있음은 물론 특별판 주문은 교보문고 마음대로 일반 판으로 바꾸어버렸다. 서민은 이래저래 힘든 세상이다. 문화의 누림에도 특권층이 있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