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자녀(6)-아브라함과 이삭

(율법에는 인신 공희를 금지하고 있지만) 가나안 땅 안에서 인신(人身) 제사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 대목에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잡으려는 광경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번제(燔祭)로 드리라는 것은 이삭을 죽인 후, 그를 제단 위에 올려놓고 불사르라는 뜻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누구보다 더 잘 아셨을 하나님께서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명령을 들은 후 나타난 아브라함의 행동이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주신 곳으로 가더니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사건에서 의인 50명이 있으면 그 성을 멸하시겠습니까?”라고 물으며, 하나님과 1:1 담판을 하였던 인물이다. 이런 아브라함이 한 마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사흘 여정의 여행 준비를 하고 있다니.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전한 복종이었다.

누구보다 일찍 일어난 아브라함은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었다. 사흘 길을 가는 동안 아브라함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3일째 되는 날이 밝자 아브라함은 종들에게 말한다.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돌아오리라.”

 아브라함은 종들이 자기와 아들의 뒤를 따라오지 못하게 한다. 대신 나귀 등 뒤에 실었던 쪼갠 번제 나무를 아들인 이삭의 등에 지웠다. 그리고 자신은 불과 칼을 들고 같이 걸어가기 시작하였다그런데 가는 도중에 가슴 철렁하게 만드는이삭의 질문이 나온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이에 대해, 아브라함은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아버지 입장에서 차마 아들아, 네가 바로 그 어린양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지시한 그 장소에서 아브라함은 먼저 제단을 쌓았다. 그리고 번제할 나무를 그 위에 벌려놓았다. 그리고 난 후, 자신의 아들을 묶어 제단 나무 위에 얹어놓았다그리고 결정적으로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들은 도망치지 않았다. 이때 이삭의 나이는 약 13, 4세 정도로 추정되는데, 그 또래의 아이가 목숨 걸고 도망을 갔다면 아브라함은 절대로 이삭을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삭은 도망가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은 채, 번제할 나무 위에 그냥 묶인 채로 아버지의 처신을 기다린다. 아버지가 칼을 들어 자신을 죽이려는 순간에도 거기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바로 이 위기의 순간에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만약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았더라면, 과연 아브라함은 이삭을 잡았을까?창세기에 등장하는 이 스토리는 과연 나라면, 아브라함처럼 아들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만든다영광백수 출신/ 광주교대 명예교수/ 철학박사/ 유튜브 강성률 철학 티비’/ ‘강성률 문학 티비운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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