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 사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최근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를 겪으면서 정치인에게 가장 치명적인 적이 무엇인지 나름 살펴보았다. 현재 중앙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사태의 중심과 최근 지역에서 재보궐 선거까지 치르게 만들었던 사건의 중심엔 욕심이 공통으로 자리하고 있다. 정치인의 출발은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이고 마무리는 언제나 행동이다. 하지만 말은 치장이고 행동이 욕심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해결책이 없는 사심의 정치로 치닫게 된다. 재산이 측정 불가의 갑부에 들어도 지위를 악용한 축재는 끝이 없다. 동물 중 가장 욕심이 사나운 게 인간임을 증명하는 현상이다. 여기서 파생하는 다툼과 사기, 모략 등은 인간의 특성이다. 욕심을 논하면 먼저 노자와 법정 스님이 생각나지만, 장자의 소요유 역시 이에 해당한다. 욕심과 권력을 향한 욕망은 동서를 구분하지 않는다. 문호 톨스토이는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사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지만 나의 지향점이 헛된 욕심과 무리한 욕망에 근거한 것은 아닌지 한 번씩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욕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욕심을 버리면 행복과 심적 부가 찾아든다는 가벼운 진리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자신의 삶을 한 번쯤 돌아보고 조금이라도 실행을 시도하는 마음가짐이 더욱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사람이 정치에 발을 들이는 의도가 국민과 사회를 위한 봉사가 아니라면 목적은 단순하다. 바로 자리를 이용한 욕심의 실현이다. 정치가 국민을 위한 봉사가 아니라 사욕이라면 끔찍하지만 이러한 행위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오늘도 벌어지고 있다. 역대 대통령의 대부분이 불행한 후기를 맞이한 것은 청와대의 터가 좋지 않은 게 아니라 자신 혹은 가족의 욕심 때문이었음을 우리는 안다. 풍수지리보다 더 무서운 것이 지위를 이용한 욕심이라는 방증이다. 최근 어느 사이비 풍수가가 북한산과 백악산의 봉우리 방향을 거론하며 청와대의 집터를 악평했다. 역대 대통령의 불운이 이와 관련이 있다는 말에 현 윤 대통령은 기겁을 하고 단 하루도 머물지 않겠다.”라는 말과 함께 용산으로 들어가 국방부 건물을 차지해버렸다. 물론 사이비 풍수가의 말이니 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청와대의 나쁜 집터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있었음을 고려하면 전혀 근거가 없는 뜬소문인 것만은 아닌 듯도 하다. 모두 권력 뒤에 숨어 혀를 날름대고 있는 사악한 욕심을 보지 못한 것일까. 역대 대통령의 모든 불운 뒤에 개인과 가족의 사욕이 끼지 않은 사건과 사고가 있었는지 돌아보면 답은 간단하다. 지고한 지위 역시 욕심을 향한 일정 통로에 불과했음을 알 수가 있다. 우리 정치의 추악한 일면이다. 아니 정치인의 진면목이다. 국회와 국무회의 등에서 국민을 위하는 척 역겨운 연기를 펼치며 치열하게 정책 정쟁을 벌이는 모습에는 토가 나온다. 이들의 공통점은 진실과 정의가 없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기에는 재물의 유혹이 너무 크고 강하다. 그래서 서양에서도 분수에 없는 복과 무고한 횡재는 만물의 조화 앞에 놓인 표적이거나 인간 세상의 함정이다. 높은 곳에서 보지 못하면 그 거짓된 술수에 빠지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라는 고언이 있다. 문제는 적당한 욕심과 지나친 욕심이다. 적당한 욕심은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지만 지나친 욕심은 사회에 파멸을 가져온다. 욕심(慾心·欲心)의 사전적 의미는 분수에 넘치는것을 탐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법정 스님은 무소유를 말하고 노자는 위도일손(爲道日損)을 장자는 소요유(逍遙遊)라는 피상의 자유를 말했다. 인간이 욕심을 모두 놓을 수는 없겠지만 불행의 극장으로 들어가는 사심은 최소한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욕심은 바람이지만 사심이 들어가면 지나친 바람으로 돌변한다. 한국의 정치인에게 최대의 적으로 일찍이 자리매김한 욕심은 단테의 신곡 지옥도에서 몇 번째 칸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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