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사진가
오늘은 나름으로 의미가 있는 날이다. 88년부터 시작한 사진을 일차 마감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출간했던 『종교 이야기』는 세계 유명 종교 및 신학자의 논문과 저서를 참고해서 엮었던 책이었고, 순수 사진집은 이번이 처음이다. 35년의 기간을 압축해서 포토 에세이라는 부제를 달아 출간했지만 엄격히 에세이는 아니다. 사진의 주석 정도에 불과한 짧은 글만 달았기 때문이다. 한 시간이면 독파가 가능한 가벼운 책이지만 나에겐 의미가 깊다. 살다 보면 문득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 시기가 있고 여기서 삶의 느낌표를 발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때’를 알아야 한다. 나아갈 때와 멈출 때 그리고 내려놓을 때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주위만 둘러봐도 확연하게 보인다. 여기서 나는 일단 멈추고 다시 뒤돌아보는 여유까지 챙겼다. 이 여유가 만들어 준 결과물이 바로 ‘흔적’이라는 포토 에세이다. 소회는 서문으로 대신한다.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새털처럼 가볍게 살아온 등 뒤를 돌아보며 흔적을 더듬어 본다. 흑백 사진 인화를 위해 암실을 개설하고 사진관을 운영하던 선배에게 기술을 배웠지만 학생들 소풍 사진 정도를 인화하던 주먹구구식이었기에 처음부터 다시 데이터를 정리하고 전문 서적을 통해 공부했다. 이렇게 쌓은 지식이 0과 1이라는 숫자 나열에 불과한 디지털에 무너지면서 현상 통이 아닌 모니터 앞에 앉아야만 했다. 그리고 어렵기만 했던 촬영 기법들이 모니터 현상을 통해 쉽게 만들어져 나왔다. 좋게 말하면 혁명이지만 영상 기록 자체가 송두리째 바뀐 것이다. 흥미로운 건 아직도 필름이라는 시대적 유물을 사용하는 사진가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디지털 사용이 어려운 연배는 그렇다 치고 젊은 20대가 필름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현상은 약간 이해가 힘들다.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필름 선택 이유는 아날로그스틱한 색감이다. 하지만 필름으로 촬영한 사진의 현상 결과물은 이미 디지털로 변환된 것이고 변환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 로스 현상은 디테일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 아날로그 색감은 이미 디지털에서 클릭 한 번으로 해결된 지 오래다.
파일 선택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자연보다는 사람에게 감동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주름으로 가득한 할머니의 얼굴에서 죽음과 삶, 달관과 해탈을 보았다. 결국 애착하던 자연 풍경은 뒷장으로 넘기고 낡은 필름에 새겨진 사람 이야기를 앞장에 세웠다. 주변을 기록했던 소소한 사진이 나이와 함께 마음속으로 훅 치고 들어온 것이다. 처음 선택에서 제외되었던 사진들이 모두 앞장에 배치가 되었으니 신기한 일이다.
중국과 수교가 이루어지자 가장 먼저 백두산부터 들렀고, 장자제와 황산 등을 섭렵했지만 책에 들여놓을 자리는 장소별로 한 장씩에 불과했다. 그랬다. 아무리 좋은 명소와 명산도 두 장이면 감동이 밋밋해지고 석 장이면 벌써 지루하다. 발달한 미디어로 인해 같은 장소의 좋은 사진들이 차고 넘치니 신선함도 없고 감동도 거의 느끼지 못한다. 결국 ‘가슴으로 읽는’ 사진은 대작이 아니라 주위에서 기록되는 소소함이었다.
사진이란 시간의 멈춤이다. 촬영 당시의 기억들이 조각이 아닌 다큐멘터리로 다가오기에 감성 또한 너무도 생생하다. 사진으로 시간을 분판 촬영하여 35년을 연결했다. 그리고 아직도 공부하고 촬영한다. 그만큼 어렵다. 5년을 배워야 간신히 초보를 면하는 이유가 사진 찍는 법이 아닌 ‘사진’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을 안다고 자신하는 순간 낙오자가 된다.”
사진은 기다림이요 돌아봄이다. 그래서 기억은 항상 등 뒤에서 그리움을 만들어 낸다. 기다림과 돌아봄은 기억의 조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