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시인
"왜 그랬어?"
"글쎄"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아.
과거와는 달리 아무리 감추려해도, 막으려 해도
억지로 강제할 수 없는 것이 요즘 세상의 통신수단이거늘,
더군다나 성숙된 우리 국민들의 민주의식과 정치의식은 세계적 수준인지라 계엄령 선포는 전쟁 발발 상황이 아니라면 어느 누구라도 그 외의 목적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런 상황에서의 계엄령 선포는 위헌적 요소를 배제할 수 없고, 내란음모죄가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을 검찰 출신인 그대가 누구보다 잘 알텐데...
왜 그런 어리석은짖을 했어?
"글쎄, 왜 그랬을까?"
"더욱 이해가 안되는 것은, 선포 이후 후속조치가 너무 어설프고 허술했는데 왜 그랬어?"
"글쎄, 그건 또 왜 그랬을까?"
"그 이유를 정말로 몰라?"
"아무리 생각해도 감이 안잡히는데..."
"이유는 간단해, 탄핵이든 하야든 자연스럽게 물러날 명분을 만든거야. 잘 생각해봐. 아주 치밀하고 정교한 계획이 있어. 야당이나 국민들은 나를 바보취급 하지만 난 바보가 아니야.
최대한 시간 끌기를 하면서 정치권, 법조계 등 사회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국민들은 분노가 극에 달하도록 만드는거야.
그 후 계획은 더욱 치밀해. 그래서 내가 쏘아올린 계엄탄은 오발탄이 아니라 야당이 계속해서 발사하고 있는 특검탄 탄핵탄이 진짜 오발탄이 되도록 유도하는 유토탄이야"
ㅡ네. 가시지요. 양심이란 손끝에 가십니다. 빼어버리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공연히 그냥 두고 건드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거야요.
윤리요? 윤리 그건 나이롱 빤스 같은 것이죠. 입으나 마나 불알이 덜렁 비쳐 보이기는 매한가지죠.
관습이요?, 그건 소녀의 머리 위에 달린 리본이라고 나 할까요? 있으면 예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없대서 뭐 별일도 없어요.
법률? 그건 마치 허수아비 같은 것입니다. 허수아비. 덜 굳은 바가지에다가 되는 대로 눈과 코를 그리고 수염만 크게 그린 허수아비. 누더기를 걸치고 팔을 쩍 벌리고 서 있는 허수아비. 참새들을 향해서는 그것이 제법 공갈이 되지요. 그러나 까마귀쯤만 돼도 벌써 무서워하지 않아요. 아니 무서워 하기는 커녕 기는 그놈의 상투 끝에 턱 올라앉아서 썩은 흙을 쑤시던 더러운 주둥이를 쓱쓱 문질러도 별일이 없거든요. 흥."
ㅡ이범선 소설 오발탄 중에서ㅡ
"더욱 치밀한 계획이 뭐냐고? 궁금해 하니
말해주지.
실은 그 계획이라는게 간단해.
야당을 비롯해 나를 반대하는 모든 세력들이 나와 똑같이 되도록 유도하는거야.
내가 물러난 이후까지를 계획한 거지."
나 혼자 당하는 건 너무 억울하잖아.
그들(나의 반대 세력들)은 이미 내가 놓은 덧에 걸려들고 있어."
"나의 진짜 계획은 이거야."
상즉(相卽)상입(相入)
상즉은 겉으로 보기에는 별개의 사물 같지만 그 본체는 하나라는 것이야, 상입이란 말은 사물이 서로 융합한다는 뜻이고. 상즉의 ‘즉卽’ 자는 ‘바로 그 자리에 나아가다’ 란 뜻이니, 상즉은 서로가 바로 상대방의 자리에 나아간다는 뜻이지. 한말로 하면 양자가 서로 같다는 말이야. 즉 두 가지 사물이 서로 달라 보이지만 그 본체에서는 서로 하나의 관계에 있는 것이란 뜻이고. 파도는 물이며, 물은 파도라고 하는 것과 같은 거야. 번뇌가 곧 보리라는 말이나 중생이 곧 부처라는 말도 모두 상즉을 나타낸 말이지.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ㅡ각자는 다르지만 전체(바탕)은 하나인거지.
개인적 의식이 집단 속에서 무의식화 되고,
현재는 나 아닌 것이 나중에는 내가 되는거지.
광화문 태극기와 여의도 촛불이 정치적으론 서로 다르지만 결국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하나라는 뜻이야.
좌파든 우파든, 진보든 보수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현재에선 서로 대립되는 둘처럼 보이지만 국가나 민족의 차원에서 보면 똑 같은 하나인거지.
아니마(Anima) 아니무스(Animus).
"내가 쏜 계엄탄이나 민주당이 쏘아대고 있는 특검탄 탄핵탄이 똑같은 오발탄이 되도록 하는거야"
"내가 계획한 것이 대체로 이런거야. 어때, 치밀하지?"
"근데 왜 마음이 이렇게 무겁고 불안하냐?
에이, 대통령 하지 말걸 괜히 했어."
"내가 대통령 된 것도 실은 오발탄 같아.
국민들이 쏜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