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사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요즘 내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게 자괴감이다. 역사의 기록으로 들어가 뒤안길로 정리된 줄만 알았던 계엄을 다시 겪게 되다니. 매트릭스의 가상 현실로 들어간 기분이다. 모두 어처구니없음의 표현으로 미쳤다라는 단어를 쓰는 게 한결 이해된다. 법률가로서 평생 법망을 피하거나 혹은 위력으로 조작과 기피라는 특권을 사용해 불법을 자행해 왔던 당사자들이 국민의 무서움을 알 리가 없다. 국민을 개나 돼지 정도로 인식하는 전체주의 혹은 군주주의, 왕권주의, 독재주의가 무소불위의 독식 처벌권을 기반으로 감히 보수라는 탈을 쓰고 정권을 장악하는 기가 막힌 현실이 가상 현실처럼 느껴지는 게 이상한 일일까. 총검을 차고 민주주의의 성지 국회를 난입하는 영상이 게임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게 나만은 아닐 것이다. 누가 이들에게 보수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는지 마음이 아프다. 대한민국에 아직 진정한 보수가 남아있다고 생각한다면 도를 넘은 착각이다. 이번 불법 계엄을 저지른 윤석열의 탄핵에 반대하거나 자리를 피해 도망친 무리가 바로 대한민국의 보수를 말살하고 보수의 가면을 뒤집어쓴 국가 배신자들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 보수는 장준하 선생을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에서 소멸하였다. 보수는 국가를 사랑하고 민족을 위해서 소심을 다하는 소위 민족주의자에 해당한다. 계엄으로 총칼을 국민에게 겨누는 보수는 없다. 나라가 망해도 자신만 좋으면 상관없는 무리가 이번 탄핵에 반대했던 당사자들임을 우리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과거를 돌아보자. 과연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이루어졌던 비상계엄이 국익을 위하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했던 적이 있었는지를. 그들에게 국민은 그저 개돼지였을 뿐이다.

지금까지 짧지 않은 세월을 살면서 많은 사건 사고와 국가적 위기를 겪었다. 아무리 큰 사건과 사고도 국가적 위기 상황을 만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혁명과 쿠데타 등의 정변은 온 나라를 뒤집어 놓기도 하거니와 국민을 생활의 도탄으로 끌고 들어간다. 이번 비상계엄이라는 극히 비정상적인 개인의 현실적 착각으로 대한민국의 몰골이 말이 아니다. 경제와 안보 그리고 외교 등이 최악의 상황으로 곤두박질을 치고 있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국가와 국민 이전에 자신의 욕망과 권위 그리고 권력욕을 위해 무너지는 국가의 현실을 돌아볼 생각이 없다. 이쯤에서 왜 대통령이 되었는지 의구심이 든다. 국가를 위한 헌신과 국민을 위한 봉사가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욕심에 기대는 대통령 놀이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기가 막힌 일이다.

대한민국은 1948년 이후 여수·순천 사건을 시작으로 총 9차례의 비상계엄을 겪었다. 비상계엄의 정의는 국가 위기 상황에서 헌법이 허용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하지만 현실은 개인이 정권을 지키거나 찬탈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이런 행위는 보통 독재와 결을 같이하기 마련이다. 특히 19615월부터 196212월까지 17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계엄 치하에서 숨을 쉬지 못하고 지냈던 시절도 있었다. 당연히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는 데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상황이 우리의 민주화를 이루는 초석으로 작용했고 1979년부터 1981년까지 이어진 계엄은 현대사에 큰 변환점이 되었다. 부마 민주항쟁, 10·26 사태, 5.17 군부 쿠데타로 이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민주화를 향한 국민의 절대적 저항의 시기에 해당한다. 이렇게 국민의 피로 완성한 민주주의 테두리에서 종북과 빨갱이를 마음껏 외치고 막말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은 오늘도 계엄 탄핵의 반대편에서 종북 반국가주의자들의 처단을 외치고 있다. 자신이 막말까지 거침없이 할 수 있는 자유가 누구 피의 대가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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