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잃은 슬픔-프로이트

오스트리아의 신경학자이자 정신의학자인 프로이트(1856~1939)는 히스테리(몸이 마비되거나 잠깐 정신을 잃음, 자주 잊어버림 등) 환자를 관찰하면서 연구를 계속하였고 이후 최면술, 카타르시스(불안, 우울, 긴장 같은 억눌린 감정이 풀리는 것) 및 자유연상법 등에 관한 연구 과정을 거치면서 정신분석 이론을 체계화하였다. 이로써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 불리게 되었는데,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꿈의 해석,정신분석 입문등이 있다.

40대 시절의 프로이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심한 적대감을 느끼는 한편, 어렸을 적 따뜻하고 포근하고 매력적이기까지 했던 어머니에 대해서는 사랑과 함께 심지어 성적 감정까지 느꼈다. 여기에서 나온 용어가 그 유명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인데, 이는 아들이 아버지를 싫어하고, 어머니를 좋아하는 본능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어렸을 적 어머니를 사이에 두고 아버지와 사랑싸움을 벌였을지도 모를 자신의 경험과 그동안 모은 자료들을 엮어 그 유명한 책 꿈의 해석을 출판했던 것이다.

이 책에서 그는 꿈이란 우리가 깨어있을 때 충족시키지 못한 욕구를 채우기 위해 꾸는 것이라 주장했는데, 예컨대 꿈속에서 횡재()를 하거나 몽정(사랑)을 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프로이트는 꿈을 통하여 저 아래 깊숙이 감추어졌던 우리의 무의식이 드러난다고 보았다. 때문에 인간의 정신 과정을 빙하 덩어리에 비교했을 때, 무의식은 물속 아래에 잠긴, 그래서 밖으로 나온 부분보다 훨씬 더 큰 부분에 해당하는 것이다. 바로 무의식을 지난날의 심리학은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고 프로이트는 지적한다. 결국 이 무의식 세계의 발견이 프로이트 심리학의 최대 업적이 되었다.

1930, 프로이트는 심리학과 독일어 문학에 기여한 공으로 괴테상을 받았다. 그러나 3년 후 나치가 정권을 잡으면서 프로이트가 유대인출신이라는 이유로 그의 많은 책들이 불태워지고 말았다. 19383월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점령한 다음에는 프로이트가 살던 집에 비밀경찰이 들이닥쳐 책과 재산 모두를 빼앗아갔다. 이에 프로이트는 자유롭게 죽기 위하여가족들과 함께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을 떠나 영국 런던으로 망명했다.

그러나 노인이 된 프로이트는 손자를 잃는 아픔을 겪고 만다. 더욱이 그는 그 무렵, 담배를 많이 피운 탓에 턱에 암이 생겨 서른 세 번의 수술을 받아야 했을 만큼 너무나 심한 육체적 고통을 겪고 있었다. 이 와중에 사랑하는 손자가 먼저 세상을 떠났으니, 그 슬픔이 오죽했을까? 이때 그는 목을 놓아 통곡했는데, 그가 눈물을 흘린 사실이 알려진 것은 전체 생애를 통하여 이때뿐이라고 한다.

어떻든 턱 수술을 받은 뒤에도 그의 병세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음식을 먹기가 어려웠고,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 이토록 건강이 호전되지 않은 것 역시 손자로부터 온 충격 때문이었다고 한다면 과장일까?

하지만 그의 또 다른 손자 루시안 프로이트는 현대 미술시장에서 최상위의 화가로 손꼽혀 왔다. 평생 할아버지의 혈통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았던 그는 자화상을 비롯해 벌거벗은 알몸을 즐겨 그렸으며, 그림 속의 살코기 같은 몸을 통해 인간의 동물적인 면을 표현하였다. 그 결과, 2008년 그의 누드화 베너피츠 슈퍼바이저 슬리핑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생존 작가로서 최고가(350억 원)에 낙찰이 되었고, 2013루시언 프로이드에 대한 세 가지 습작은 경매 사상 최고가(1,528억 원)를 경신했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