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사진가
얼마 전 한겨레신문에서 ‘개소리 정치학 [유레카]’라는 칼럼을 읽었다. 한 달 전에 구매해서 읽었던 해리 프랭크퍼트의『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라는 책을 거론했기 때문이다. 겨우 90여 쪽을 넘지 않는 손바닥 크기의 이 책은 초판 14쇄, 개정판 4쇄를 기록하며 뉴욕 타임스 베스트 셀러 1위까지 올랐다. 시대를 넘어 우리 주변과 생활에 만연한 개소리는 따로 연구의 대상이 되거나 관심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원제의 ‘헛소리, 엉터리’라는 해석이 쉽게 다가오지만 번역을 맡은 철학자 이윤은 굳이 개소리라는 이름을 달았다. 그냥 헛소리보다는 개소리가 Bull이라는 단어에 어울렸기 때문인가 보다. 저자는 개소리를 기만적인 부정확한 진술 즉, 협잡이고 의도적인 진술이라고 한다. 여기서 협잡은 허세 부리는 말 또는 행동을 통해 기만적으로 부정확하게 진술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거짓과는 약간의 의도적 괴리가 있지만 진실에는 관심을 드러내지 않는다. 거짓말은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하지만 개소리(Bullshit)는 목적을 위한 내용 없는 부르짖음이다. 여기서 우리는 현재 헌법재판소와 국정조사의 진행 상황을 볼 수 있다. 내란범들의 진술과 변호인의 변론은 거짓에도 미치지 못하는 개소리에 불과하다. 지구촌이 함께 봤던 국회 침탈 현장을 부정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심지어 호수 위에 흐르는 달그림자를 쫓는 느낌이라고도 했다. 이 표현은 과거 일제 사법부에서 사용했던 유명한 판결문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술을 좋아하는 중국 시인 이백을 떠오르게도 한다. 하늘에 달과 술잔의 달 그리고 호수에 떠 흐르는 달을 노래하며 삼천 배를 기울였다는 고사는 낭만적이지만 그가 평생 술에 취해 쫓았던 허상이 바로 호수에 떠있던 달이다. 윤석열이 추구했던 파시즘의 허상이기도 하다.
다시 개소리로 돌아가 보자. 모든 동물은 나름대로 언어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사람의 언어와는 많은 차이가 있으며 그만큼 다르다. 동물은 소리로 의사 표시를 하며 그 내용은 대부분 경계와 생식을 위한 의사 표시다. 그리고 약간의 감정도 표현하지만 언어가 아닌 소리다. 중요한 역할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다. 세분된 의사 표시 즉,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소리라고 한다. 개가 하면 개소리다. 개소리에는 경계와 생식 경쟁을 위한 허세가 거의 전부다. 여기서 특별한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은 없다. 소리와 언어의 차이다. 언어는 말이고 말은 인간이 사용하며 ‘말씀’이라고 표현한다. 여기엔 정확한 의사와 철학과 사상이 있지만 인간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개소리는 자신도 해석 불가한 부정확한 심리가 작용한다. 요즘 내란범들의 변론은 거짓이 아니다. 거짓은 밝혀지지만 부정확한 진술은 그냥 개소리에 불과하므로 추후에 밝혀지는 진술이 아니다. 이를 받아 쓰는 언론은 언론대로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개소리 핑퐁을 멈추지 않는다. 특히 언론은 극우 유튜버들의 개소리를 끌어 올려 정당한 뉴스와 나란히 배치한다. 동격을 만드는 것이다. 미친개가 짖어대니 사람도 엎드려 같이 짖는 형국이다. 내란범들의 변론을 사람 말로 취급해서 일일이 받아주는 것도 이젠 힘들고 지겹다. 어쩌다 개소리와 사람 말씀이 동등한 반열에 올랐는지 궁금하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사법을 지키기 위해 법원을 침탈하고 부숴버리는 집단이 국민의 안위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기이한 상황이 지극히 비현실적이지만 우리는 실제 겪고 있다. 목사는 사익을 챙기기 위해 하나님을 팔고 정치인은 헌법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극우 범죄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들이 내지르는 건 말이 아니라 개소리다. 거짓말은 그래도 말이지만 개소리는 그냥 소리다. 사람이 개처럼 자신만을 위한 소리를 지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