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경기도는 세계 최초 파격적인 정책을 선보였다. 소멸 위기에 놓인 면(面) 단위의 농촌 마을에 소득, 직업, 연령 등에 관계없이 지급하는 ‘농촌기본소득’ 시범사업이다. 당시 경기도(도지사 이재명)와 경기도농수산진흥원(원장 강위원)은 우리 사회에 이 화두를 처음 던진 정책 제안자이자 설계자이고 추진 기관이다. 농촌지역 면 단위 대상 ‘농촌기본소득’은 세계 최초다.
6개월 넘게 토론의 토론을 거쳤다. 민주주의자 이재명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토론을 즐긴다. 내가 토론 끝에 화가 나서 “토론만 하지 말고 저에게 전권을 주시라. 맡겨 주시면 안 되겠냐. 대선도 다가오고 시간이 급하지 않냐!” 했을 정도다. 경기도는 1,400만 인구 대비 농촌 인구는 2%에 불과하다. 정치인이 표를 계산했다면 농촌기본소득 시범사업 추진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사회실험을 통해 성과를 홍보하고 대선에도 활용하자.”는 내 구상을 오히려 질책했다. “왜 실험으로 끝내려고 하는가. 아예 농촌기본소득 실현지를 만들어야 한다. 2년 실험이 아니라 10년 지급으로 가자. 왜 대선에 활용하려고 하는가. 국가 시책을 위한 실험을 정치적으로 접근하지 마라.” 주의를 줬다. 농촌기본소득 실험을 위해 경쟁이 치열했다. 군수님들이 직접 프리젠테이션을 하면서 유치 노력을 했다. 농촌기본소득 사회실험 대상지로 선정된 연천군은 보수 일색 접경지역이다. 군수도 국힘당 소속이다. 주요 정책을 실행하는데 본인의 선거 유불리와 무관하게, 소속 정당 계산하지 않고 공정하게, 참모 앞에서도 그렇게 입장을 밝히는 정치인 드물다. 감동했다. 오히려 정치적 계산을 먼저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도지사 이재명은 ‘농촌은 안보이고, 농민은 군대다.’라는 신념이 확고했다. 경기도가 세계적인 농촌기본소득 사회실험을 통해, 농업 농촌 농민을 살리는 최종적 국가정책 대안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기본소득 등장은 한국사회 한 정치인의 뜬금없고 공상적인 제안이 아니다. 포플리즘이라고 공격할 정쟁의 대상도 아니다. 4차 산업혁명시대, 이미 세계적인 화두다. 세계를 이끄는 기본소득 선도국가가 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나라 시행 이후 따라가는 추격국가가 될 것인가 결단해야 할 시기다. 기존 산업혁명은 줄어든 일자리보다, 생겨나는 새로운 일자리가 더 많았다. 4차 산업혁명은 양상이 다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영역을 대체해나가기 시작한다. 인공지능의 발달과 빅데이터의 결합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되던 고유의 영역까지 점차 확장해 간다. 논리와 계산과 같은 영역뿐 아니라 창의력, 창조성이 강조되는 영역(음악, 미술 등)까지 안전한 곳이 없다.
4차 산업혁명은 일자리를 없애면서 생산성은 고도로 상승시킨다. 인간의 노동력은 줄어들고 생산성은 높아져 모두가 먹고 살 수 있는 잉여 생산물이 축적된다. 소수의 대귀족-다수의 천민을 만드느냐, 모든 인간을 귀족(생계를 위해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으로 만드느냐를 결정해야 한다. 기본소득제 도입은 이처럼 미래 새로운 사회구성의 토대를 어떻게 재구축할 것인지 합의해야 하는 국가공동체 차원의 과제가 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200만 개 정도의 신규일자리가 생기지만, 700만 개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분석이 있다. 신규일자리가 새로운 기술에 익숙한 이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700만 명의 새로운 실업자를 만드는 셈이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사실상 어려워진다. 왜 부자나라에 가난한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가. 기본소득을 새로운 대안으로 설계해야 할 이유다.
기본소득을 전면적으로, 국가공동체 전체 차원에서 당장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재정문제와 더불어 국가적 대타협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실패와 실수를 줄이고 국가와 지역에 맞는 기본소득 안착을 위해서도 전면 시행에 앞서 사회실험, 시범사업, 선도사업이 필요하다. 농촌기본소득을 우선적으로 실험하고 시범실시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방소멸의 직접적 타격은 농촌이 받는데, 농촌을 살리려는 어떤 정책도 백약이 무효인 현실 탓이다. 근본적인 기간산업과 지역인 농촌이 가장 심각한 수준의 소멸과 고사가 임박했기 때문이다. 기존 정책으로 농어촌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한계에 봉착했다. 농촌기본소득은 어쩌면 최후의 농촌정책일 수 있다. 불평등 완화와 지역 소멸 위기 극복을 위한 마지막 대안이다.
농촌기본소득은 농촌이라는 지역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특정 인구집단을 지급 대상으로 하는 농민·청년 기본소득과는 차이가 있다. 지금까지 지역균형발전정책은 혁신도시·도시재생 등 비수도권의 도시 건설·확충에 집중해 오히려 농촌 인구·자원이 인근 도시로 빠져나가는 결과를 초래했다. 기존 ‘농민’기본소득을 넘어서 농촌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누구나 똑같이 돈을 지급하면 농촌은 급속도로 복구될 것이다. 농민수당과 농민기본소득은 지급 대상이 농민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에, 농촌인구의 약 75%에 해당하는 비농민에게는 아무런 혜택이 없다. 대다수 농촌주민들은 기존 농정에서도 배제되고 지역균형발전정책에서도 소외돼 있는데, 농촌기본소득은 이런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에서 현재 사회실험 시범실시 중에 있다. 5년간 지급되는 농촌기본소득은 청산면에 실거주하는 모든 개인에게 조건 없이 월 15만 원(연 180만원)을 정기적으로 지급한다. 사업비는 경기도와 해당 군이 7대 3으로 분담한다. 현재 청산면에 주소지를 두고 있는 4,176명 중 3,650명(실거주자, 외국인과 현물 받는 인구 포함)에게 지급되고 있으니, 1인당 연 180만 원 계산하면 매년 65억 넘는 소득이 한 개 면에 발생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역화폐로 지급하되 연 매출 10억 미만 사업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지역화폐는 지급받는 날로부터 90일 안에 사용하지 않으면, 미사용 금액이 자동으로 환수된다. 농촌기본소득 신청은 전입신고를 하고 한 달이 지난 시점부터 가능하다.
마을경제에 탄력이 붙고 있다. 청산면이 달라지고 있다. 지역화폐는 청산면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지역 안에 부족한 병·의원과 약국, 보습학원만 연천군 전체로 사용처를 확대했다. 사행성·유흥업소는 사용처에서 제외된다. 지역화폐를 받는 가맹업소가 일반음식점과 숙박시설, 주유소 등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청산면에 소규모 점포가 늘고 있다. 정서적 안정감도 커지고 있다. 농촌기본소득의 월별 지급액이 그렇게 큰 금액은 아니지만, 오늘보다 내일을 더 기대하게 되었으며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집 이외의 외부출입이 적었던 노인들이 동네 노인들과 함께 근처 식당에 다닌다거나, 그동안 부담이 되어 시도조차 못했던 커피숍에도 들러 커피도 마셔보는 등 타인과의 교류활동이 많아져 활력이 생기고 건강에도 좋다는 평가가 다수다. 자식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고, 매달 일정 금액만큼 필수 구입품목(예, 유류비 등)에 지출할 수 있어 안정적인 경제생활과 소비활동 증가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소상공인 매출도 증가하고 있다. 지역 내 짜장면집, 치킨집, 빵집, 식당, 편의점 등 소상공인 매출이 이전에 비해 2-3배 이상은 증가했으며, 그 결과 기존의 상점들은 메뉴나 판매 품목도 늘어나고 있다. 창업도 많아졌다. 시범사업 초기부터 미용실, 고깃집, 카페 등이 새로 입점하면서 동네에 활기가 띠고 있고, 한때 한산했던 거리가 저녁마다 마을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기도 한다. 무엇보다 관계의 변화다. 마을 분위기가 좋아졌다. 이웃 간 말과 행동이 부드러워지고, 인심이 후해지기도 하며, 주민들 간 단합과 참여의 의지도 강해지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 청산면 인구감소율을 거론하면서 이재명표 농촌기본소득 실험이 실패하고 있는 것처럼 호도한다. 국힘당 정치인들은 언론보도를 근거로 공격하기도 한다. 연천군 청산면에 가서 지역 주민 한 명이라도 만나본 언론 기자이거나 정치인이라면 감히 일언반구 호들갑 떨 생각도 못 할 것이다. 청산면의 변화 앞에 말문이 막힐 것이다. 사회실험 몇 년 만에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이라 생각했는가. 월 15만 원 지급, 5년 사회실험지에 어찌 거주지 이전을 쉽게 결단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연천군처럼 군사접경 오지에 해당하는 농촌지역에 말이다. 억지 근거를 들이대 인구감소율이 연천군 전체 비율보다 높다고 주장하나, 굳이 비교하자면 2개 읍을 빼고 면 단위 인구변화를 보면 상대적으로 감소율이 낮은데다, 인구감소율로만 대조해 농촌기본소득 실험을 평가절하해서 비판하는 건 무지몽매 그 자체다.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 농촌기본소득 사회실험을 주목하자. 이재명표 농촌정책이다. 지난 대선 패배 후 2022년 4월부터 기본소득이 지급됐다. 시정 보완해야 할 과제도 많고, 지급액도 현실화해야 한다.
전국 면단위 인구 470만 명이다. 1단계 월 15만 원(연 180만 원) 기본소득을 지급할 경우, 연간 9조 원 소요된다. 2024년 정부예산 657조였다. 기초연금 예산이 24조 4천 억이다. 예산이 문제가 아니라 결단과 선택의 문제다. 농촌기본소득 법제화가 필요하다. 좋은 정책이 좋은 현장을 만든다. 정책은 정치가 결정한다. 정치는 주권자의 요구에 따른다. 농촌기본소득 운동과 확산이 절실한 이유다. 결국 농촌기본소득은 정치가 해결한다. 때가 왔다. 빛의 혁명기다. 내란종식과 혁명의 완성으로 농촌기본소득시대를 만들어 낼 정치,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