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시인
“왜 나만 혼자일까?”
행정구역상 내가 다녀야 할 염산서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다니지 않고 나는 마을에서 나와 동갑내기인 사촌 누님과 둘이서만이 소재지에 있는 염산국민학교로 입학을 하였다.
마을에서 학교까지는 5Km가 넘는 거리였는데 만 7세의 어린 나에게 걸어서 등·하교 하기엔 너무도 아득한 거리였고 버거운 길이었다.
더군다나 유일하게 같이서 등·하교를 할 수 있는 누님과의 동행마져 “여자애하고 같이 다닌다”는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고 보니 난 언제나 혼자일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여럿이 함께 노래하며, 깔깔대며 학교를 오가는 서국민학교에 다니는 마을의 친구들이 한없이 부럽기 까지 했다.
나의 주민등록상 주소까지 옮겨서 그 학교로 입학을 시키고 자식이 보다 더 좋은 환경 속에서 공부 할 수 있도록 애써주신 부모님 마음이었겠지만 부모님의 그 사랑과 애정이 철부지였던 나로선 차라리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왜 나만 혼자일까?”하는 생각을 마음 속으로 수없이 되뇌이며 고독한 길을 걸어야 했던 나의 유년은 쓸쓸함 그 자체였다.
그렇게 혼자만의 길을 6년동안 오가면서 나는 그 어린 나이에 절대고독을 체득했다.
그런 체득을 할 수 있었던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내가 사는 마을과 옆마을은 꽤 먼 거리였는데 그 중간쯤엔 공동묘지가 있고 인가는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그 거리가 나에겐 죽음보다 두려운 공포의 공간이었다.
당시 우리 마을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가로등도 없어서 해가 지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만이 천지창조 이전의 암흑처럼 깔리곤 했었다.
인가에서 창문 틈으로 새어나오는 불 빛 하나 볼 수 없는 공동묘지의 공간은 더욱 더 그랬다.
혼자서 그 길을 지나칠 때면 집안 할아버지들로부터 들은 귀신 만났던 이야기가 떠오르고, 특히나 그 곳은 산사태로 인해 길가의 주인 없는 묘지가 무너져 내려서 사람의 유골이 나뒹구는 곳이었기에 어린 나에게 공포의 공간 그 자체였다.
학교에 갔다 올 때면 대낮에도 그 공간을 지나칠 때마다 소름이 돋고 등골이 오싹하기 일쑤였다.
어쩌다가 밤이 되어서 그 길을 통과해야 할 때면 혹시나 우리 마을로 가는 사람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옆마을의 끝에서 누군가 나와 함께 우리 마을까지 가줄 사람을 기약없이 기다렸었고, 기적처럼 그런 사람을 만나는 날은 운이 좋은 날이었다, 그러지 못한 날은 옆마을에 사는 친구가 그 마을의 맨 끝에 있는 집 앞에서 계속 소리를 지르며 내가 그 두려운 공간을 통과할 때까지 도와주곤 했었다.
그 친구의 소리는 그 공간을 통과하는 동안 내게 있어서 종교보다 위대한 믿음이었고, 힘이었고, 그 무었보다 든든한 나의 동행이 되어주었다.
지금도 그 친구의 목소리는 나의 뇌리 깊숙히 남아있다.
그러한 경험 때문에 나는 6년간의 초등학교 등.하교 길을 통해서 절대고독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 고독을 함께 해 줄 동행을 그리워했다.
5학년 때의 어느 초가을.
무순 이유에선지? 나는 학교가 파한 후에도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고 아무도 없는 교실에 혼자 남아 있었다.
얼마나 그렇게 혼자 있었는지? 어느새 유리창 가득히 검붉은 저녁노을빛이 물들었고, 교실 뿐 만 아니라 교정 전체가 숨 막힐 듯 한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절대고독 그 자체였다.
유리창 가득히 물든 노을빛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을 멍때리고 앉아 있는데 그 숨 막힐듯 한 고요를 깨뜨리는 소리.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잔다”
그제서야 해가 기울어가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운동장으로 나가보니 그 때까지 집에 가지 않고 한쪽 구석에서 공기놀이를 하던 여학생들 몇이서 다시 고무줄 놀이를 시작하면서 그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 지금 이 시간까지도 나 혼자가 아니었구나”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솟구쳐오르는 까닭 모를 울컥함에 나의 두 볼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매 순간 순간마다 나와 함께 하는 주변의 사람들과 현상들과 또는 나만의 의식 속에서 관계 되는 모든 것들이 나의 동행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도 일시적이고 상대적인 것일뿐이다,
부모형제도, 처자식도, 친구도, 그 누구도 내 생이 다하는 순간 까지 나의 완전한 동행이 될 수는 없다.
나의 유일하고 절대적 동행이 있다면그 것은 오로지 절대고독 뿐이다.
그렇듯 우리 인간은 절대고독의 존재이기에 비록 한시적이고, 순간적이고, 상대적인 것에 불과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과 공간을 나와 함께 하며 살아가는 나의 주변과 사람들이 한시적일지라도 나의 동행으로서 가장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