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들의 우정-장자와 혜시(2)

장자(莊子)가 혜시(惠施)에게 비록 말은 신랄하게 했지만,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평소 장자는 세상 사람들과 논쟁하지 않았다. 그러나 혜시를 만나면 통쾌한 논전을 벌이곤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혜시는 일찍 죽고 말았다. 하루는 장자가 혜시의 무덤 앞을 지나게 되었다. 장자는 뒤따라오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초나라에 사는 어떤 미장이(담장이나 벽, 부뚜막을 바르는 사람)가 자기 코에 파리 날개처럼 얕게 횟가루를 묻히고는, 그것을 친구인 목수 석()에게 정(돌에 구멍을 뚫기 위해 만들어진 쇠 연장)으로 쳐서 떨어내라고 하였다네. 이에 석()은 정을 코에 대고 망치로 쳐서 횟가루를 떨어냈으나 코는 전혀 다치지 않았다네. 미장이 역시 꼿꼿이 선 채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았고. 송나라 왕이 그 말을 듣고 석()을 불러 말하기를, ‘나에게 그 재주를 보여주겠느냐?’라고 하니, 석이 말하기를 전에는 깎아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어렵습니다.’라고 했다네. 왕은 자신의 재주를 펴볼 수 있는 상대자가 아니라는 말이지. 여기서 말하는 목수는 바로 나이고, 그 상대자는 혜시라네. 나는 변론의 상대를 잃어버렸네!”

그리고는 슬퍼하는 것이었다. 이와 매우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백아(伯牙)는 춘추시대 초()나라 사람이지만, () 나라에서 높은 벼슬을 지내기도 한 거문고의 달인이었다. 그가 성련(成連)에게 거문고를 배우는데, 처음 3년 동안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이에 성련은 그로 하여금 동해 봉래산에 보내 바닷물이 출렁거리는 소리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게 했다. 여기에서 백아의 감정이 움직여 연주 실력이 크게 발전하였고, 마침내 대가(大家)가 되었다.

그런데 그가 연주한 음악은 친구인 종자기(중국 초나라의 나무꾼)만 이해할 수 있었다. 음률을 잘 구별하였던 그(종자기)는 백아의 거문고 소리를 들을 때, (백아)가 높은 산을 생각하는지 물이 흐르는 장면을 생각하는지 금방 알아차렸다. 그리하여 하늘 높이 우뚝 솟는 느낌은 마치 태산처럼 웅장하구나.”라 하기도 하고,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의 흐름이 마치 황허(중국 제2의 강) 같구나!”라고 맞장구를 쳐주기도 하였다.

한 번은 두 사람이 놀러갔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져 동굴로 들어갔다. 백아는 빗소리에 맞추어 거문고를 당겼다. 처음에는 비가 내리는 곡조인 임우지곡(霖雨之曲), 다음에는 산이 무너지는 곡조인 붕산지곡(崩山之曲)을 연주하였다. 종자기는 그때마다 그 곡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아맞혔다. 여기에서 지음’(知音)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그런데 종자기가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등지자 백아는 너무나도 슬픈 나머지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거문고 줄을 스스로 끊어버렸다. 이것을 백아절현(伯牙絶絃)이라 한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다시는 거문고를 켜지 않았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음악은 더 이상 무의미했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장자에게는 혜시라는 존재가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논쟁을 벌일 때에는 서로 싸우기도 하였지만, 장자는 혜시가 있음으로 해서 논리를 맘껏 펼칠 수 있었다. 장자에게 혜시는 징검다리 혹은 사닥다리이자 일종의 촉매제였다. 바둑을 두거나 운동 경기를 할 때에도 자신의 실력에 맞는 상대방이 있어야 제 실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이치와 같다고나 할까. 이렇게 보건대, ‘라이벌이란 내가 쳐부수어야 할 적이 아니라, 도리어 내가 아끼고 사랑해야 할 대상이라 할 수 있겠다.(영광 백수 출신, 광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철학박사, ‘강성률 철학티비’, ‘강성률 문학티비운용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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