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소멸市郡위기대응본부 창립 세미나를 다녀오며
‘출산과 육아’는 구조의 문제다
“상아탑이 무너지고 있다”라는 절규는 단지 교육계의 이야기가 아니다. 학령인구의 급감은 대학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생존 그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인구 감소의 파장은 학교, 병원, 기업, 시장, 결국 마을 전체의 소멸로 이어진다. 그런데도 지금껏 중앙정부의 인구정책은 현실과 동떨어진 채 땜질 처방에 그쳐왔다. 출산 장려금, 육아지원금 등 금전적 유인책은 일시적 효과만 낼 뿐, 근본적 삶의 조건을 바꾸지 못했다. 무엇보다 정책이 중앙 집중형으로 설계돼 지역 실정과 전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젠 중앙정부가 ‘인구정책’을 설계할 게 아니라 ‘인구정책 권한’을 지역에 넘겨야 한다. 일선 시·군이 주민 실태에 맞는 유연한 대응이 가능할 때, 인구정책은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특히 “지방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살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복합커뮤니티센터, 지역 병원, 공공 보육시설 등 삶의 인프라가 먼저다. 출산과 육아는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아이 낳을 수 있는 사회’는 선택 이전에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단발성 성공사례’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몇몇 지자체의 인구정책이 성과를 낸다고 해서 전국적인 효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책이 모델화돼 있지 않고, 확산을 위한 시스템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좋은 정책”이 아니라 “따라 할 수 있는 정책”이 돼야 전국적으로 효과가 생긴다. 일례로, 아이 돌봄 공동체를 성공적으로 운영한 A군의 사례가 있다고 하자. 이를 타 지자체가 복제하려면 매뉴얼, 예산, 법적 기반, 인적 구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는 이런 시스템이 전무하다. 때문에 좋은 정책은 그 지역에만 갇힌 ‘로컬 실험’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혼족 세대가 늘어나고, 출산율이 바닥을 치는 시대일수록, 지역 간 협력과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각 지자체의 성과를 모으고, 검증하며, ‘정책 도서관’처럼 축적할 수 있는 공공 플랫폼이 필요하다. 단일 지역의 기적을, 전국의 일상으로 만드는 것이 이 시대의 과제다.
‘관광’은 흘러가는 ‘사람’을 붙잡는 일이다
‘관광객 유치전략’은 단순한 관광산업 활성화가 아니다. 핵심은 ‘체류에서 정주로의 전환’이다. 현재 외국인 관광객은 지역 경제에 잠시 이바지할 뿐, 인구문제 해결엔 무관하다. 하지만 그들이 해당 지역에 정착해 거주자로 전환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를 위해선 관광지를 삶의 기반으로 바꿔야 한다. 주거, 의료, 교육, 커뮤니티 시설이 없다면 아무리 풍광 좋은 지역이라도 ‘살고 싶은 곳’이 되지 못한다. 일시 체류가 아닌 장기 체류, 나아가 ‘정주’로 이어지도록 설계된 소프트 기반 정책이 필요하다. 특히 K-문화에 매료된 외국 청년층의 ‘로컬정착 수요’에 주목해야 한다. 창업비자, 언어 교육, 온라인 근무 기반 제공 등 이들이 실제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지역은 새로운 인구 유입 통로를 얻게 된다.
‘학교’가 사라지면 ‘마을’도 사라진다
혼족 사회가 일반화되며 결혼과 출산은 줄어들고, 학령인구는 줄었다. 그 결과 지방의 초·중·고교가 줄줄이 폐교되고 있다. 이는 곧 ‘마을의 소멸’로 이어진다. 우수한 교육 인프라는 그 자체로 인구 유입 요인이다. 실제로 자사고나 혁신학교가 있는 지역은 외지 부모들이 거주를 고민하고, 이주를 결정한다. 이는 지역 상권과 정주 인구, 청년층 재배치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 지방정부는 교육을 단순히 ‘의무제공 서비스’로 인식하지 말고, 지역의 정주 유인을 높이는 핵심 자원으로 다뤄야 한다. 특히 IT 기반 원격수업, 지역대학 연계형 커리큘럼, 외국대학 연계 프로그램 등을 유치해 교육을 특화해야 한다. 교육 없는 지역엔 미래도 없다.
인구정책은 ‘삶의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위기는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결혼해도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회, 대학이 사라지고 병원이 닫히는 지역, 문화가 고립되고 교육이 도태되는 도시. 이것이 바로 인구소멸시대다. 혼족 사회와 저출산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구조적 실패에서 비롯됐다. 이제는 ‘출산하라’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상아탑의 붕괴는 교육의 실패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붕괴 신호다. 지역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더 늦기 전에, 지금이 구조를 바꿀 마지막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