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사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이상한 정부의 이상한 탈선으로 인해 조기 대선을 치르게 되었다. 어제부터 시작한 사전투표는 오늘 오후 6시까지 끝나고 본투표는 63일이다. 알다시피 본 투표는 현 거주지의 투표소를 찾아야 한다. 직장인이나 바쁜 자영업자가 전국 모든 투표소를 이용할 수 있는 사전투표를 선호하는 이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 사전투표는 토요일이 끼지 않은 목요일과 금요일이다. 자연스럽게 사전투표를 어렵게 하는 모양새다. 이유를 선거관리위원회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계엄이라는 특수 현상과 내란과 외환이 뒤얽힌 시국에서 치러지는 이번 대선은 일반적이지 않다. 그래서 국민의 투표 의욕 역시 일반적이지는 않은 게 사실이다. 재외국민 투표율이 역대 최고치를 찍은 사실만으로도 방증은 충분하다. 불식간에 타락한 민주주의 국가로 전락함은 물론 언론자유도가 수직으로 추락하는 모습은 해외에서 거주하는 국민에게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곧 부끄러움으로 승화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무려 열 시간을 자동차로 달려 투표권을 행사하고, 1,000km를 비행기로 이동해서 투표했다는 인증이 SNS를 통해 올라오고 있다. 충격이 부끄러움으로, 부끄러움이 분노로, 분노는 행동으로 이어졌음이다.

내란 수괴를 옹호하고 자신의 아버지가 일본 국적이었다고 주장하는 대통령 후보가 유권자 삼분의 일에 상당하는 지지를 받고 있다. 비현실적이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런 부류의 국민은 항상 존재했다. 대부분 지킬 것이 많고, 그만큼 잃을 것도 많은 사람들이다. 조선 시대에는 노론이 그랬고 일제 강점기엔 친일 매국노가 그랬다. 이제 그 맥은 친일로 부자가 된 조상을 가진 자들로 이어졌다. 자신의 작은 이익에 국가의 위기를 팔아넘기는 사람들, 요즘은 그들을 뉴라이트 혹은 극우라고 부른다. 여기에 서민은 서민 출신에게 투표하지 않는다는 이상한 현상까지 더해지면, 민주를 자칭하는 진영은 항상 보수에게 2%를 덤으로 주고 출발해야 한다. 그래서 김대중이라는 대단한 사상가도 군사독재의 주역과 손을 잡고서야 겨우 정권을 잡았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재벌 보수와의 단일화를 통한 시너지로 간신히 대통령이 되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의 탄핵이라는 절대적 도움으로 비교적 쉽게 당선되었지만, 이재명 후보는 직전 선거에서 정의당과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실패했다. 내부의 배신과 검찰의 억지 사법 리스크도 원인으로 작용했지만, 단일화 실패도 원인 중의 하나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극우의 이상한 행위에 경기(驚氣)까지 일으킬 필요는 없다. 악이 있으니 선이 있고, 그림자가 있으니 밝음이 있다. 자신만의 영달이 목표인 부류의 인간은 소멸하지 않는다. 일일이 느끼면서 산다는 건 고역이지만 민주라는 의미의 발전은 생각보다 더디게 진행한다. 개인의 투표권을 통해 나아가는 민주의 발전은 더딜 수밖에 없다. 그나마 행사하지 않는 마지막 권리는 멈춤이 아니라 퇴보의 양분이 된다. 투표하지 않는 사람은 국가 혹은 사회에 대한 불만을 절대 말하면 안 된다. 그럴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내 한 표가 국가에 던지는 의미는 크다.

올해 유권자는 4,440만 명이다. 개인이 던지는 한 표는 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국가를 운영하는 모든 통치와 직결이 된다. 한 표의 가치를 4,700만 원으로 공지했지만, 국가 일 년 재정으로 계산하면 7,600만 원이다. 여기에 정상적인 대통령의 활동을 α로 설정하면 1억의 가치에 가까워진다는 개인적 생각이다. 국가의 비전이 내가 결정한 한 표로 결정이 된다는 게 대견하지 않은가. 이러한 공식은 자신을 위해 정권을 탐하는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번에 탄핵 된 정권이 그 답이다. 내 소중한 표가 오히려 마이너스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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