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 사진가
언제부터인지 사람 관계에 스멀스멀 불신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더니 이젠 진심이 사라져가고 있다. 신뢰를 잃으면 모두 잃는 것이라는 교훈을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지만 이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모양이다. 진심을 믿지 않는 부류에겐 진심이 위선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가는 중이다. 특히 정치인의 위선은 진심으로 가림막을 치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한편으론 이해가 된다. 국민과 국가 그리고 사회를 향한 봉사의 외침이 진심이었던 정치인은 이미 오래전에 희귀종이 되어 이젠 찾기가 어렵다. 민선으로 선출되었던 우리 지역의 군수를 돌아봐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군정과 군민에게 진심이었던 군수는 기억에 없다. 모두 자신의 영달과 측근의 사업을 위한 편의 그리고 그들 자녀의 취직 등을 벗어나지 못했다. 진심을 담아 일했던 군수는 없었다. 군수라는 직을 향한 욕망이 우선이었을 뿐 군민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인물은 기억에 없다. 본인이 생각하는 최선과 군민의 일인으로 판단하는 최선은 매우 다를 것이다. 진심 없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은 바닥의 서민과 공감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 새롭게 느끼는 사회적 구조가 마음이 아픈 이유다. 헌법은 평등이라는 의미를 분명하게 담고 있지만 사회는 절대적인 비평등의 구조 속에서 보이지 않는 계급을 이루고 있다. 법의 적용이 다르고 노는 바닥이 다르다. 같은 말을 해도 진영에 따라 때로는 박수를 때로는 신랄한 비평을 받는다. 대통령이 되어도 그의 출신 성분에 따라 절반의 국민과 언론 대부분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사회는 병들고 있다. 가진 자와 없는 자의 틈새기에 보이지 않는 신분제가 강하게 투명 벽을 친 것이다. 이러한 시대 오류적 현상은 서민이 서민을 싫어하고 얕보는 기이한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서민의 자기 부정인 셈이다. 그래서 서민은 오히려 가진 자를 동경하고 그에게 표를 주기도 한다. 그래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민부터 귀족당 모두에게 멸시와 무시를 받으며 대통령직을 어렵게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이제 이재명 대통령이다. 소년공 출신의 대통령이라는 미담 이전에 그가 겪은 행로를 보자. 사람을 판단하기 위해선 그가 살아온 과정을 보면 된다. 가난과 탄압 그리고 죽음의 위기를 겪으며 만들어진 굳은살은 메가톤급 맨탈을 갖게 했고, 일을 하고 싶은 강한 욕망은 진심으로 서민과 공감을 이루었다. 명비어천가를 부르자는 것은 아니다. 어려운 생활을 핑계로 주저 앉은 그 시대 많은 인재를 향한 아쉬움의 변명이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아들이 결혼했다. 눈에 띄었던 건 그가 소년공 시절 같이 동고동락했던 시계 소년공 친구들을 초대했다는 것이다. 사람의 본성은 성공 후에 보인다고 했다. 대부분 과거의 가난과 직분을 숨기고 싶기 때문이다. 영광에도 그런 사람은 있다. 영광 문화인은 수준이 맞지 않아서 놀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어린 시절 같이 놀던 친구도 절대 만나지 않는다. 자신의 과거를 들키는 게 수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성공한 예술인이라는 자가 망상증이 원인이다. 대통령의 소년공 친구를 보면서 문득 떠오른 기억이다. 진심은 여기서 출발한다. 자신의 영달을 내려놓고 국민을 우선으로 하는 마음에서 출발한다면 그는 분명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을 것이다. 특히 최근에 겪은 계엄의 풍랑으로 추락한 국격과 민주주의의 상처를 복구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지자체의 수장도 민심을 잃으면 바로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정치는 국민이 하는 것이다. 길게 도열한 장·차관의 절을 받으며 레드 카펫을 밟고 외국 순방길에 오르던 윤석열보다는 함께 걸으며 환하게 웃으며 떠나던 이 대통령의 순방길에서 우리는 희망찬 미래를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