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시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역사는 사랑과 전쟁의 이야기가 그 주류를 이룬다.
적국의 여인을 납치함으로써 발발 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딧세이”로부터 그리이스 로마신화나 전 세계 유명 문학작품들 거의가 다 사랑과 이별의 정한사 그대로이다.
본 고는 그런 문학작품 속의 허구적인 이야기가 아닌 실제로 있었던 조선시대 우리 선조들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들을 시대별, 또는 대상별로 몇 회에 걸쳐 음미해보고자 한다.
남녀간 사랑의 감정이야 한낱 관념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 관념 속에는 한없는 그리움과 조바심과 설레임이 동반되고, 하나 같이 이별의 통증이 따르는 것이기에 사랑은 관념을 뛰어넘어
실제적 애증의 통한으로 발전되는 인간사인 것이다.
그러기에 실제로 있었던 이조시대의 사랑이야기는 수 십번을 되새김질 해도 늘 신선한 감동을 준다.
1.황진이와 그의 남자들
- 30년 면벽수도의 노력을 버려버린 지족선사 -
생불(生佛), 30년 면벽수도를 한 고승, 당대 세간 사람들이 살아있는 부처(부처의 현신)라 칭하며 우러러보고 받들만큼 법력이 높있던 지족선사.
그 30년 면벽수도의 업적을 한 순간에 파계(破戒)시켜버린 황진이.
그렇게 법력이 높았던 지족선사였건만 수도승이 되고자 찾아온 황진이한테 반해 그만 실족(失足:30년 공부가 도로아미타불)을 하고 말았으니...미인 앞에서는 천하 고승이라도
그 인간적 감정을 어쩔 수 없나보다.
- 왕족 출신의 벽계수 -
세종대왕의 서자인 영해군의 손자로서 왕족 출신이며, 조선 500여년 역사상 문장이 가장 뛰어난 인물 중 한 명인 벽계수는 "황진이가 제아무리 나를 유혹해도 난 결코 넘어가지 않겠다"며 장담을 했다.
그런 벽계수에게 황진이가 초대장을 보냈다.
“보름달이 뜨는 저녁에 만월대에서 만납시다.”
휘영청 달이 밝은 밤, 벽계수가 말을 타고 만월대에 도착하자 황진이가 즉석에서 시조 한 수를 읊었다.
청산리 벽계수야 쉬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 하면 다시 오기 어러우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간들 어떠리.(벽계수야 지체 높고 잘났다고 뽐내지 마라.
인생도 한 번 가면 다시 오기 어렵거늘
황진이(명월)가 있으니 같이 한 번 놀아보자)
이에 화답을 하지 못한 벽계수는 그만 황진이에게 홀딱 반하고 말았다.
시에서의 벽계수는 왕족 벽계수이기도 하지만 청산을 휘감고 돌아 한번 흘러가버리면 영원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계곡의 푸른 물 벽계수(碧溪水
)이기도 하며, 변함없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청산(靑山:황진이 자신을 표현함)과 댓구를 이루는 상징적이며 철학적(불변과 가변)의미까지를 내포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연의 명월(明月)은 황진이 자신의 기명(妓名)으로, "나 같은 미인이 온산을 환히 밝히고 있는데 네가 어찌 흐르는 물처럼 그냥 지나쳐버릴 수 있겠느냐?"는 암시로써 지체 높은 왕족 벽계수를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고보니 벽계수도 황진이에게 마음을 빼앗길 수 밖에...
- 황진이가 유혹하지 못한 유일한 남자 화담 서경덕 -
서경덕(호:화담)은 조선 중기의 유학자이자 도학자로 주기론의 선구자인데 황진이가 유혹하지 못한 유일한 사람이다.서화담을 유혹하지 못한 황진이는 결국 그의 제자가 되었고, 자신과 스승인 서화담, 그리고 박연폭포를 송도 삼절이라 칭했다.
황진이의 온갖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은 서화담이
대단한 진짜 이유는 도학자로서 냉철함과 비정함이 아니라 그도 황진이를 제자가 아닌 한 여인으로 생각한 감정을 간직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감정을 극복하고자 몸부림 친 한 남자로서의 인간미이다. 그런 몸부림은 자신도 모르게 황진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한 그의 시 한 수에 잘 나타나 있다,
마음이 어린후이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운산에 어내님 오랴만은
부는 바람 지는 잎에 행여 귄가 하노라.
(마음이 어리석으니 하는 일도 다 어리석다. 이 깊은 산 속에 어찌 황진이가 올 수 있으랴만 바람소리 낙엽지는 소리에 행여 황진이 그인가?하노라) 고고한 도학자이기 전에 얼마나 따뜻한 인간미를 간직한 서화담 다운 인품 인가?
- 황진이가 마음을 준 유일한 남자 소세양 -
대제학 소세양이 하인을 시켜 황진이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용은 단 한글자. 榴(석류나무 유)
하인이 받아들고 온 황진이의 답장도 똑 같이 단 한글자였다. 漁(고기잡을 어)
무슨 뜻일까?
소세양이 보낸 석류나무유의 음훈을 한문으로 풀어쓰면 碩儒那無遊(석유나무유)로 “큰 선비가 있는데 어찌 같이 놀지 않을 수 있겠는가?”이며, 황진이의 답장 역시 음훈을 소리나는대로 풀어쓰면 高妓自不語(고기자불어)로써 "고귀한 기생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이다.
그렇게 단 한번의 주고받은 편지로 마음이 통해버린 두 사람의 사랑은 그들이 계속해서 주고 받은 시를 통해 얼마나 진실되고 애절한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蕭寥月夜思何事(소요월하사하사) / 달 밝은 밤에 그대는 누구를 생각 하세요
寢宵轉輾夢似樣(침소전전몽사양) / 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꾸시나요
問君有時錄忘言(문군유시녹망언) / 붓을 들면 때로는 제 이름도 적어보나요?
此世緣分果信良(차세연분과신랑) / 저를 만나 기쁘셨나요?
悠悠憶君疑未盡(유유억군의미진) / 그대 생각하다 보면 모든 게 궁금해요.
日日念我幾許量(일일염아기허량) / 하루에 제 생각 얼마만큼 하나요?
忙中要顧煩或喜(망중요고번혹희) / 바쁠 때 얘기해도 제 말이 재미있나요?
喧喧如雀情如常(훤훤여작정여상) /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정겨운가요?
- 황진이가 소세양을 그리워하며 보낸 시 -
두 사람이 주고 받은 시는 몇 편이 더 있으나 지면 관계상 생략한다. <다음(차례)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