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 철천지 원수로-한비자와 이사

역사적으로 이 분야에서 유명한 예는 중국의 한비자와 이사(李斯, 중국 진나라의 법가사상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두 사람의 견원(犬猿, 개와 원숭이) 관계는 마침내 한 위대한 철인을 죽음으로 내몰았으니. 한비자는 소년 시절에 이사와 함께 대유학자인 순자에게서 배웠다. 그런데 당시 한나라는 진나라에게 많은 땅을 빼앗긴 채, 멸망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에 마음이 답답해진 한비자는 왕에게 편지를 띄워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건의하였다. 그러나 그의 충정에도 불구하고, 왕으로부터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성격이 괴벽(乖僻, 이상야릇하고 까다로움)한 한비자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하여 이제는 글로써 자신의 울분을 풀겠다는 마음에서 10만여 자나 되는 책을 썼는데, 이것이 바로한비자이다. 중국 고대 법가들의 사상과 주장을 담은 이 책은 인간과 권력에 대한 색다른 철학을 담고 있는 명저(名著)이다. 그러나 왕은 책을 눈여겨 보지도 않았으며, 한비자가 말더듬이라는 이유로 등용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 책을 가지고 진나라의 시황제에게로 갔다. 진시황은 그것을 읽어보고, “참으로 내가 이 사람을 만나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이사가 이것은 틀림없이 한비자의 저술인데, 저는 이 자와 함께 공부한 바 있습니다.”라고 자랑하며 한나라에 가면, 반드시 그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고 아뢰었다.

이에 진시황제는 한비자를 만나볼 욕심으로, 한나라를 급히 공격하도록 명령하였다. 시황의 군대가 국경을 넘어오자, 그 공격의도를 알아차린 한나라 왕이 즉시 한비자를 진나라로 보냄으로써 화를 모면할 수 있었다.

한비자를 직접 만나본 시황은 그의 탁월한 견해를 높이 평가하였으며, 또한 크게 환대하였다. 그러나 친구인 이사는 학생 시절에 자신이 한비자보다 못한 줄을 이미 알고 있던 데다, 그가 시황의 총애까지 받게 되자 심한 질투심을 느꼈다. 그래서 어느 날, 시황 앞에 나가 참소하여 말하였다. “한비자는 한나라의 공자(公子, 지체높은 집안의 자제)입니다. 그는 자기의 조국 한나라를 위하여 이곳에 왔습니다. 결국 진나라를 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 임금께서 그를 등용하지도 않고 붙들어 두었다가 돌려 보낸다면, 천하를 통일하는 데 후환을 남기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는 우리의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우리에게 반드시 불리할 것인즉, 그에게 죄명(罪名)을 씌워 죽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비자를 모함하는 이사 자신도 따지고 보면, 초나라 사람으로서 진나라가 조국이 아닌 것은 마찬가지였다. 우둔한 시황은 이사의 간교한 말을 믿고 한비를 하옥시켰지만, 그를 죽일 의향까지는 없었다. 이에 안달이 난 이사는 시황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몰래 하수인을 시켜 독약을 보내 자살하도록 명령하였다. 한비자는 이사의 모함을 눈치 채고 여러 차례 시황에게 상소하였으나, 끝내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결국 그의 억울한 죽음은 동문수학(同門受學, 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배움)한 친구의 손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이사 역시 조고(趙高, 진나라의 환관) 참소로 처형당하고 말았다. 나중에야 모든 것을 깨달은 시황이 아직도 한비가 살아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사람을 보내어 그의 죄를 벗겨주었다. 그러나 이미 한비의 몸은 백골(白骨)로 변해 있었다. 결국 친구를 시기 질투한 그 못된 심보가 위대한 친구를 사지(死地)로 몰고 그 스스로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게 했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영광 백수 출신, 광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철학박사, ‘강성률 철학티비’, ‘강성률 문학티비운용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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