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시인

강구현 시인
강구현 시인

- 황진이가 마음을 준 단 한명의 남자 소세양 -

소세양은 중종 초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가 나중에 대제학을 지냈는데, 그 또한 당대의 풍류남을 자처하던 사람. 그는 황진이를 만나기 전에는 "남자가 여색에 혹함은 남자가 아니다. 나는 황진이를 만나서 딱 30일을 지내고 깨끗이 끝내겠다.” 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렇게 큰소리치고 송도에 내려간 소세양은 편지 한장을 써서 하인을 시켜 황진이에게 보냈다.

내용은 단 한글자. (석류나무 유) 무슨 뜻일까? 소세양이 보낸 석류나무 유의 음훈을 그의 의중에 맞게 한문으로 풀어쓰면 碩儒那無遊(석유나무유)큰 선비가 있는데 어찌 같이 놀지 않을 수 있겠는가?”이다. 이 뜻을 읽어낸 황진이의 답장 역시 단 한글자. (고기잡을 어) 이 또한 음훈을 소리 나는대로 풀어쓰면 高妓自不語(고기자불어)로써 고귀한 기생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이다.

비록 기생 신분이지만 함부로 마음을 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게 단 한번의 주고받은 편지로 마음이 통해버린 두 사람은 한 달을 기약하고 동거를 했다. 어느덧 그 날이 다가와 이별의 술잔을 나누는데, 소세양은 안절부절하고 황진이는 시 한 수를 읊었다.

月下庭梧盡(월하정오진) 霜中野菊黃(상중야국황) 樓高天一尺(누고천일척) 人醉酒千觴(인취주천상) 流水和琴冷(류수화금랭) 梅花入笛香(매화입적향) 明朝相別後(명조상별후) 情與碧波長(정여벽파장)

달빛 어린 뜨락에 오동잎 다 지고, 서리 맞은 들국화는 노랗게 물들었네. 누대는 높아 한 자만 더 오르면 하늘인데, 사람은 취해서 천 잔의 술을 마셨네. 물소리는 거문고에 차갑게 스며들고, 매화향기는 피리소리에 휘감기네. 내일 아침 우리 서로 헤어진 후에는, 사무치는 정 푸른 물결처럼 끝이 없으리.

이 애절한 시 한수에 소세양은 지신이 장담했던 남자다움을 스스로 포기 한 채 그녀와 한동안 더 머물러 살게 되었다.

황진이 또한 일생을 통해 이성으로서 사랑했던 이는 바로 소세양 한 명 뿐이었다고 한다.

소세양과 이별을 한 후에도 황진이는 소세양을 그리워하며 쓴 시가 있는데 가수 이선희가 노래로 불러서 히트 시키기도 했다.

蕭寥月夜思何事(소요월하사하사) / 달 밝은 밤에 그대는 누구를 생각 하세요

寢宵轉輾夢似樣(침소전전몽사양) / 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꾸시나요

問君有時錄忘言(문군유시녹망언) / 붓을 들면 때로는 제 이름도 적어보나요?

此世緣分果信良(차세연분과신랑) / 저를 만나 기쁘셨나요?

悠悠憶君疑未盡(유유억군의미진) / 그대 생각하다 보면 모든 게 궁금해요.

日日念我幾許量(일일염아기허량) / 하루에 제 생각 얼마만큼 하나요?

忙中要顧煩或喜(망중요고번혹희) / 바쁠 때 얘기해도 제 말이 재미있나요?

喧喧如雀情如常(훤훤여작정여상) /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정겨운가요?

두 사람이 주고 받은 시는 몇 편이 더 있으나 지면 관계상 생략한다.

 

2.이화우(梨花雨)에 실어보낸 평생의 꿈

ㅡ이매창과 유희경ㅡ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라

매창은 전북 부안의 관기로 촌은 유희경과 정이 깊었으나 그가 귀경 한 뒤 소식이 끊어지자 오매불망 그를 그리워하며 쓴 시다.'

그녀는 상대방의 매정함에도 불구하고 일생동안 유희경만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그래서 그가 남긴 시는 오지 않을 임 유희경을 그리며 쓴 정한상사(情寒想思)의 시가 대부분이다.

황진이가 세상과 남자들을 조롱하며 풍자했다면 매창은 한 번 맺은 정을 평생 간직한 채 그 기다림과 애절하고도 인간적인 그리움을 순도 높은 다수의 작품으로 남겼다.

전북 부안군 부안읍 매창로 89번지에는 매창의 묘가 있다.

매창은 이미 몇 백년 전에 저 세상 사람이 되어 무덤위 방초만 무성하지만 그의 순결하고 아름다운 사랑은 영원히 사그라들지 않을 시의 향기로 남아 아직까지도 우리들 마른 가슴을 홍건히 적셔준다.

그의 시 한 편을 더 올린다.

하룻밤 마음고생에 귀밑머리 희었어요

소첩의 마음고생 알고 싶으시다면

헐거워진 이 금가락지 좀 보시구려

내년 봄 배꽃이 피어나면 필자도 매창의 무덤에 찾아가 막걸리 한 사발 주고 받으며 그의 향기에 취해보리라.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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