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희 (사)여민동락공동체 이사
“저, 진짜 도저히 못하겠어요.” 어느 날, 요양보호사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치매를 앓고 계신데다 거동이 불편하고 대소변을 잘 가리지 못하는 어르신을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목욕하기를 극도로 거부하셔서 애를 먹었다. 어르신의 몸을 보살피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열어야 했다. 요양보호사는 어르신과 눈맞춤하고 이야기를 듣고 감싸 안으며 어르신과의 교감에 정성을 기울였다. 인내심을 갖고 긴 호흡으로 어르신과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곧 돌봄의 시간이라고 믿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르신과의 관계가 친밀해지자 드디어 목욕을 시켜드릴 수 있게 되었다. 끈기있는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은 순간, 요양보호사의 입에서 터져나온 ‘못하겠다’는 소리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먼 도시에 살면서 가끔 어르신 댁을 방문하는 자녀로부터 요양보호사를 교체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우리 어머니한테 더 맞는 분을 찾았다’면서 ‘내일부터는 안 오셔도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느닷없는 통보에 당황한 것도 잠시, 요양보호사는 설움이 복받쳤다고 했다. 그 서운함이 너무나 커서 ‘도저히 못하겠다’고 생각했단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치매 증세가 심해져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르신을 상담하고 자녀들과 의논해 장기요양등급을 신청하기로 했다. 어르신은 불과 얼마 전까지 노인일자리 활동을 하실 정도로 건강했던 분이라 안타까움을 더 컸다. 어르신이 사시는 동네는 이웃 간 교류가 활발한 곳이어서, 하루 3시간 방문요양서비스가 제공된다면 마을 안에서 충분히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다행히 장기요양등급을 받을 수 있었는데, 자녀들은 당장 돌봄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서비스 이용의 일정 금액을 납부하는 본인부담금을 다 내고서는 이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본인부담금 관련 혜택을 주는 다른 기관을 찾겠다고도 했다. 어르신을 위해서 애써왔던 시간과 노력이 무색할 만큼 냉정한 태도에 할 말을 잃었다.
복지는 공짜가 아니고, 돌봄은 시장에서 편의적으로 구매하는 상품이 아니다. 이 당연한 사실이 통용되지 않는 돌봄 현장의 천태만상을 보면서 대한민국 사회가 ‘돌봄 국가’ ‘돌봄 사회’로 가는 길은 여전히 멀다는 생각을 한다. 노인 돌봄의 핵심적인 영역을 담당하고 있는 노인장기요양서비스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탈적인 행위들은 ‘돌봄의 시장화’가 만들어 낸 불행한 단면이다. 2022년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에 따르면, 한국 장기요양서비스의 97.5%를 민간이 공급하고 있다. 압도적인 민간 비중은 개인의 돌봄 선택권을 확대하고 신속한 서비스 제공에 기여한 바 있다. 반면에 돌봄 제공 기관들이 과다한 경쟁으로 내몰리면서 서비스의 질적 불균형과 돌봄 노동환경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노정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실은 돌봄이 인간 중심, 관계 중심의 가치있는 실천으로 자리매김 되지 못하고, 시장에서 쉽게 고르거나 교체할 수 있는 기능적인 상품 정도로 취급되는 경향을 부추긴다. 이렇게 형성된 돌봄 생태계가 돌봄의 공공성과 돌봄 윤리 확립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적 평가가 필요하다.
한편, 사회의 재생산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필수적 활동으로 ‘돌봄’은 그 가치와 위상이 높아지고 있으나, 돌봄 노동에 관한 사회적 인식과 보상은 한참 뒤처져있다. 돌봄의 필요성이 증대되면서 비공식적 영역에 머무르던 돌봄이 공식적 영역으로 많이 이전되었지만, 돌봄 노동은 여전히 중년 이상 여성들의 저임금 노동으로 묶여 있다. 특히 서비스 이용자의 선택권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돌봄 노동의 전문적 재량권을 상대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는 돌봄의 사회적 가치보다는 경제적 효율성을 더 쫓게 만드는 ‘소비자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돌봄은 인간의 ‘취약성’과 ‘의존성’에 대한 응답이다. 인간은 누구나 돌봄을 주고 받는 존재이다. 생애주기별 연쇄적인 돌봄관계망을 이탈해 온전히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돌봄이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상호연결된 관계의 산물이라는 점을 자각할 때, 돌봄을 바라보는 태도와 입장도 바로 세울 수 있다. 돌봄은 단순히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노동행위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적 돌봄 대신 기능적 돌봄만 부각되는 소비재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도록 건강한 돌봄의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는 노력이 절실하다. 돌봄은 상품이 아니다.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 돌봄을 받는 사람이 모두 주체가 되어 존중하고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형성되는 가치있는 ‘실천’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