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진 법성문화진흥원 고문
며칠 전, 목포대학교 오창현 교수가 법성포 지역사에 귀중한 사진을 보내주었다. 바로 법성포의 백미로 손꼽히던 ‘제월정’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이는 광복 이후 「법성향지」를 편찬하던 선배들이 끝내 수집하지 못해 아쉬워했던 자료다.
“독바우 삼거리에서 돌아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제월정이었다. 날아갈 듯한 추녀와 고풍스러운 경관은 법성포 전체의 분위기를 압도했다. 아쉬운 것은 그 사진을 찾지 못한 점이다.” — 「법성향지」(1992년)
사진 설명 : ①제월정 ②곡성현 세곡고 앞 굴비 덕장(걸대) ③법성진성 서쪽 성벽 노거수 ④월랑대 ⑤법성진성 남쪽 성벽(12고을 세곡고 앞) ⑥12 고을 세곡고 표지 목 ⑦조운선 선착장 ⑧다랑가지(多浪串) 해변 굴비 덕장(걸대)
법성 고을 사람들이 복원한 ‘제월정’
‘제월정’은 조선 효종 연간에 건립되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소실되었다. 이후 1957년, 법성포 유지들이 뜻을 모아 복원되어 멀리서도 눈에 띄는 상징적인 건축물로, 법성포의 랜드마크였다. 그러나 1974년 화재로 다시 사라졌고, 현재는 주춧돌과 간이 정자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필자가 「법성향지」(2024년)를 집필할 때, 전주이씨 문중의 이강수 후손이 쓴 「제월정 사적」을 통해 삼성출판사의 「신편 세계 여행기」에 제월정 사진이 실려 있다는 정보를 접했는데 마침 영광군이 수집한 1950년대 사진 속에 ‘제월정’의 모습이 담겨 있어 이를 수록했다. 이 사진이 현재까지 확인된 ‘제월정’의 유일한 사진 자료다.
이번에 오 교수께서 보내주신 사진은 이보다 앞선 1930년 「목포부사」에 실린 것으로, 1957년 복원 이전의 원형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초대 지도군수 오횡묵이 “가히 호남의 명루”라 극찬했던 바로 그 모습이다.
복원은 오로지 지자체장의 의지에 달여 있다
1974년 화제 이후, ‘제월정’ 복원을 위한 지역민들의 노력은 오랜 시간 이어졌다. 그러나 해당 부지가 사유지라는 이유로 영광군은 복원에 난색을 표였고, 이에 사회단체가 나서 전주이씨 문중과 협의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이후 2021년, 풍수해 재해 위험지구로 지정되며 영광군이 토지를 수용했고, 복원의 걸림돌이었던 토지문제는 마침내 해결되었다.
이에 법성문화진흥원은 ‘2024 법성포 문화유산 학술대회’를 통해 복원의 필요성을 공론화하고, 영광군에 복원을 직·간접으로 요청했다. 그러나 군의 입장은 “법성진성이 사적으로 지정되면 함께 복원하겠다”라는 것이다.
<법성진성의 국가사적 지정>은 현 집권 여당인 민주당이 선거 때마다 반복해 온 이른바 ‘민주당의 10대 선거 공약’ 중 하나다. 헤아려 보면, 아마 20여 년 동안 민주당이 이행하지 못한 영광군민의 숙원 과업이다. 현재도 여전히 민주당이 군민들에게 약속한 선거 공약이다. 그동안 학술대회에 초빙된 문화재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은 “이 과제는 지자체장의 의지에 달려 있다.”라는 것이었다.
조선대학교 신웅주 교수는 2024년 법성포 문화유산 학술대회에서 “현대인은 직관적 리얼리즘을 추구하며, 문화유산도 고증을 바탕으로 재현하는 흐름이 활발하다. 고증만 확실하다면 지자체와 국가 예산으로 충분히 복원 가능하다.”라고 강조했다.
‘제월정’ 복원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토지문제는 이제 해결되었고, 학술대회를 통해 전문가들의 논증도 마무리되었다. <법성진성의 국가사적 지정>이라는 큰 과업에 비하면 ‘제월정’ 복원은 훨씬 수월한 일이다.
"가장 쉬운 일부터 시작하라. 그러면 나머지도 쉬워진다." 이는 헨리 포드(1863년~1947년)가 한 말이다.
부디 지자체장이 앞장서서, 법성포의 백미, ‘제월정’이 하루빨리 복원되기를 기대해 본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