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시인

강구현 시인
강구현 시인

무덤까지 따라간 순애보

- 기생 신분으로 사대부의 선영에 안치된 홍랑

짧고도 간결한 싯구(詩句)를 통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사랑과 이별의 장면들...그리움같이 슬픔같이 때로는 한없는 기쁨과 견디기 힘든 아픔같이 가슴을 파고드는 인간의 정()!

시심을 통해 드러나는 그 정이야말로 그 어떤 사랑보다 따뜻하고 진실된 인간미라 아니할 수 없다.

인간적 정리에 호소하는 것은 한낱 지나친 감상주의라고 비판할지 모르겠으나, 지나치게 주관적인 이념이나 집단의 논리를 내세워 물욕과 권력욕 명예욕등만을 추구하며 인간적 심성을 오염시키고 영혼을 황폐화시켜가고 있는 작금의 세태에서 더 이상의 그 인간상실을 막아내고 인간의 자기 구출을 할 수 있는 수단으로써 옛사람들의 시심을 읽어내고 그 인간다움에 동화되는 가치야말로 요즈음 자본의논리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보라!

짤막한 싯구에서 울려퍼지는 저 가슴 뭉클함과 뜨거움과 목메임과 개화(開花)의 열정과 낙화(落花 )의 통한을 통한 우주적 섭리(攝理)!

청백리 집안의 전형적인 유가(儒家) 출신으로 삿됨 앞에서는 굽힐줄 모르는 성품의 소유자이면서도 조선 중기의 정치적 지배 이념이었던 주자학의 규범에 얽메이기를 거부하며 순수 인간미를 추구했던 사람. 고죽(孤竹) 최경창.

그가 북평사( 北評事)로 재직하던중 그 곳 경성의 관기였던 홍랑(紅娘)과의 순애보는 참사랑의 표본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양천리라 했던가? 고죽이 머나먼 북녘땅 함경남도에서 임기를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가게 되자 그 이별의 정이 못내 아쉬운 홍랑은 함경남도의 남쪽 끝자락인 영흥지역까지 배웅하며 밤비 내리는 함관령(咸關嶺) 고갯마루에서 사랑의 징표로 묏버들 한 가지를 꺾어 고죽의 손에 쥐어주며 이별사(離別辭) 한 수로 그를 전별한다.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임의 손대

자시는 창 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 잎 곧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

관기의 몸으로 함경도의 경계를 벗어나 따라갈 수 없는 몸이라서 "하찮은 버들가지나마 내 혼을 담아 드리오니 부디 가시는 길에 버리지 마시고 한양에 가시거든 님께서 주무시는 창 밖에 심었다가 파릇파릇 새 잎이 돋아나거든 그 잎은 오매불망 님만을 그리는 이 홍랑의 넋이요 분신이라 여기시고 어여삐 여겨 주소서."

감히 사대부의 본가 침실을 넘볼 수 없는 기생의 신분이기에 그 님의 창 밖 먼 발치에서나마 님을 보고파하는 간절함과 애절함이라니...쯪즈 이 쓰라린 이별의 정한을 어이할고...

문학적 작품으로도 완벽한 이 시조 한 수에 감탄 한 고죽 또한 그 가련하고도 여윈 버들가지를 장단구(長短句) 한 수의 한시(漢詩) 그릇에 그대로 담아냈으니....이는 홍랑을 향한 고죽의 무한 애정이라 아니할 수 없다'

折楊柳寄與千里人(절류양기여천리인):버들가지 꺾어서 먼임에게 보내오니

爲我試向庭前種(위아시향정전종):바라건대 나를 위해 뜰 앞에 심으소서

須知一夜生新葉(수지일야신생엽):하룻밤 지나 새잎 나면 모름지기 아오리다.

憔悴愁眉是妾身((초췌수미시첩신):시름겨운 야윈 얼굴이 바로 제 모습임을.

다음은 최경창이 홍랑의 시문 "묏버들 가려 꺾어"에 답한 "증홍랑시(贈洪娘詩)"이다.

相看脈脈贈幽蘭(상간맥맥증유난)서로 바라보다 난초를 드리나니

此去天涯幾日還(차거천애기일환)지금 멀리 가면 언제나 돌아오리

莫唱咸關舊時曲(막창함관구시곡)함관령의 옛 노래를 부디 부르지 마소

至今雲雨暗靑山(지금운우암청산)지금은 구름비에 청산이 어두워라.

그렇듯 고죽에게도 홍랑과 똑 같은 이별의 아픔이 있었기에 그 버들가지는 필시 고죽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말라죽지 않고 무사히 한양까지 동행하여 고죽의 창밖에서 보드랍고 윤기나는 새 잎을 피워냈으리라

그 이별 후 홍랑은 고죽이 병석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천만리 머나먼 길 한양까지 달려가서 극진하게 병수발을 하였으며 또한 고죽이 종성부사

로 귀임중에 경성 객관에서 사망하자 그의 반구(返柩:객지에서 죽은사람을 고향으로 돌려보냄)행렬을 따라 상경한 후 3년간 시묘살이를 하며 수절했다고 한다.

그 후 홍랑이 죽자 완고하기로 유명한 해주최씨

문중에서도 홍랑의 정절에 감복하여 그녀의 시신을 고죽의 묘소 옆에 안장해주었다니 이얼마나 알뜰한 인정의 극치인가!

사랑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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