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 철천지 원수로-흄과 루소(3)
앞 호(362와 363)의 내용을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루소는『사회계약론』과 『에밀』의 출간으로 어려움에 빠졌고, 이 루소를 흄이 도와주었다. 그렇다면, 루소가 두 책 때문에 어려움에 빠진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일반 의지’란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일반의지(一般意志)란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개인적인 이익이 아닌, 보편적인 이익이나 공공선을 추구하는 의지’인데, 각 개인은 이 ‘일반 의지’에 따라 자신의 자유와 평등을 최대한으로 확보하기 위해 하나의 약속을 하고 국가를 형성한다. 이러한 루소의 견해는 지배자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개개인 상호간의 권리를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기득권층에서 볼 때는 매우 ‘불온’한 사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에밀』에서도 “어린이들에 대한 모든 간섭을 배제하고, 자유롭고 자발적인 교육을 시행해야 한다.”주장하고 있는 바, 이 역시 전통적이고 권위적인 당시 프랑스 사회 체제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었으리 짐작된다.
어떻든 좋은 분위기에서 만났던 흄과 루소 두 사람의 관계가 꼬이게 된 것은 영국에서 일어난 대반전(大反轉)으로부터였다. 흄이 상대적으로 덜 주목을 받았던 데 비하여, 루소는 그야말로 찬양을 받았던 것이다. 『영국사』의 저자로 부와 명성을 손에 쥐고 공직에서도 많은 활약을 펼쳤던 (영국 출신) 흄이 (타국인 프랑스 출신) 루소로 인하여 빛을 잃게 된 것이다. 이것 때문에 흄의 마음이 잔뜩 상해 있는데, 당시 비정상적인 심리 상태에 있던 것으로 보이는 루소마저 엉뚱한 주장을 하고 나왔으니. “대중들은 속기 좋아하고, 흄은 그들을 속이기 위해 태어났다. 그의 초청은 나의 명성을 깎아 내리려는 비열한 음모였다!”
흄은 자신의 호의와 진심을 몰라준 채, 한바탕 악다구니를 쓰고 프랑스로 되돌아가버린 루소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흄은 즉각 사건의 자초지종을 밝힌 소책자를 출판하여, 루소의 비방이 아무런 근거도 없다고 주장했다. 나중에는 루소를 맹비난하는 단계에까지 나아갔다. “그는 가장 사악한 인간이자 인간의 본성을 모독하는 가장 흉악한 악당이며, 심지어 거짓말쟁이에 잔인하고 파렴치한 인간이다!”
사실 흄은 보통의 회의론자(懷疑論者, 쉽게 믿지 않고 의심하는 사람) 이미지, 가령 풍채가 빈약하고 남을 의심하는 눈초리에 비아냥거리는 것 같은 입을 가진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얼굴은 둥글 넓적하고 살이 많이 찐 편이었으며, 입은 크고 우직한 느낌을 주었다. 누구든지 그의 모습을 보면, 거북이 요리를 먹고 있는 시의원을 대하는 느낌을 가질 만 했다. 그러나 그가 파리에서 근무하는 동안에는 사교계 부인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얼굴이 못났음에도 미혼(未婚)인 까닭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의 성품이 느긋하고 선량했음은 분명했던 것 같다.
그런 그가 루소에 대해서만큼 자제력을 잃고 무너졌다는 사실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이성(理性)으로 무장한 흄이 풍부한 감수성의 주인공 루소의 공격에 과민 반응을 보이다니. 1766년 여름. 흄은 평생 추구하던 중용(中庸)의 도를 벗어 버리며, 결국 ‘이성은 감정의 노예일 뿐’이라는 사실을 증명하였거니와 이 대목에서 우리는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유럽 궁정과 사교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사상 초유의 스캔들’을 목도하게 되는 것이다. 이 일이 얼마나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던지, 흄을 잘 아는 사람들은 ‘미치광이’ 루소 때문에 그의 성격이 변한 사실에 몹시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영광 백수 출신, 광주교육대 명예교수, 철학박사, ‘강성률 철학티비’, ‘강성률 문학티비’, 블러그 ‘강성률철학아카데미’ 운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