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 철천지 원수로-데카르트와 파스칼(2)

이성(理性)을 강조하는 데카르트와 종교적 신앙심을 더 우위에 놓는 파스칼은 모든 면에서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파스칼은 나는 데카르트를 용서할 수 없다.”(365호 참조)는 말까지 내뱉고 말았다.

파스칼의 생애에 놀라운 사건은 1654년 말에 일어난 마차 사고였다. 파스칼은 사두 마차(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있었는데 말의 고삐가 풀려 마차가 다리로 돌진했던 것. 다행히 그의 생명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지만, 이 경험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로 하여금 본격적인 자기 성찰을 하도록 만들었다. 이 와중에 파스칼은 저 유명한팡세,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등을 저술했고,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다. 그를 박살내기 위해 전 우주가 무장할 필요는 없다. 한 번 뿜은 증기, 한 방울의 물이면 그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박살낸다 해도 인간은 우주보다 더 고귀하다. 인간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그리고 우주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주는 아무 것도 모른다.”

1651년 아버지가 죽은 후 여동생이 수도원으로 들어간 것과는 달리, 파스칼은 사교계에 뛰어 들어 인생의 기쁨을 추구하였다. 노름에서 딴 돈을 공정하게 분배해주는 문제에서 확률론을 창안하기도 했다. 16541123일 깊은 밤, 파스칼은 회심(回心, 죄를 깊이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향하는 결단)의 기쁨을 체험하고 포르루아얄 수도원의 객원(客員, 손님 대우로 일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 점은 수녀인 여동생에게서 입은 감화가 컸다고 한다.

당시 프랑스의 가톨릭 교회 안에서는 정치적 주도권을 쥐고 있던 예수회와 포르루아얄(프랑스 파리의 남서쪽 슈브르즈 골짜기에 있었던 여자 수도원)에 모인 얀선파(도덕적 엄격주의를 지킨 교파) 사이에 신학상의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는데, 파스칼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논쟁에 말려 들었다. 그는 예수회 신학의 거짓을 폭로하는 한편 그 오만 불손한 윤리를 공격하였다. 이때 파스칼이 쓴 서한문은 그 경쾌하고 솔직한 표현에 의해 프랑스어에 새로운 문체를 도입한 결과가 되었다.기독교의 변증론을 쓰려고 했으나 병으로 인하여 완성하지 못한 채 39세로 생애를 마쳤다. 사망 후 그의 가까운 친척과 포르루아얄의 친구들이 그 초고를 정리·간행하였는데 이것이 저 유명한팡세의 초판본(1670)이다.

팡세의 제1부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비참함, 2부는 하나님과 함께 있는 인간의 행복으로 되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구절은 (앞서 말한 대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것이다. 파스칼은 생애의 말년에 기독교의 진리성을 변증하기 위해 924편의 짧은 문장들로 구성된 이 책을 집필하였던 것이다.

파스칼은 1658년에 치통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 두통이 멈추지 않아 잠도 제대로 못 이룰 정도로 고통스럽게 4년을 지냈다. 그 와중에도 이 두통을 잊고자 사이클로이드(직선 위로 원을 굴렸을 때, 원 위의 정점이 그리는 곡선)를 연구하여 수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렇다면, 진공 실험을 두고 파스칼과 다툼을 벌였던 데카르트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알아보도록 하자. (영광 백수 출신, 광주교육대 명예교수, 철학박사, ‘강성률 철학티비’, ‘강성률 문학티비’, 블로그 강성률철학아카데미운용)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