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식 염산면 야월리 1구
흑백 사진 속
아련한 추억들 위로
먼지처럼 내려앉은
빛이 바랜 기억들은
퇴색된 회색빛으로 물들어가고
철없던 소싯적 영웅담도
오랜 세월의 그늘진 그림자가 드리워져
아름다웠던 미담으로 회자 되지 못한 채
조용히 잊혀져 가나보다
옛정 나눌 수 있는 벗들은
떠나가고 없지만
그래도 정을 불일 만한 곳을 찾아
마을 고살길 따라 집을 나서고 보니
낯선 듯 익숙한 세월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
밀려오는 회한과 감회가
가라앉아 있던 마음을 들뜨게 한다
골목길 담 넘어
기웃대는 능수화는
햇빛에 고개 쳐들고
골바람에 머리 흔들어대며
"나를 잊지마세요"라고
인사하는 것 같아
주홍빛 머금은 아름다운
꽃말이 떠오르고
해가 뉘엿뉘엿 큰북재 잔등에
내리깔릴 때 쯤
방을 드나들며 오르내리던 툇마루에
무거운 등짐을 내려놓고
긴 여정에도 품고 살아온
삶의 보따리를 풀어 제치고
두 날개 활짝 펴
낙향가를 읊조리며
푸른 하늘 훨훨 날아 보고자
산업의 주역으로 전국을 다니며
쌓아 놓은 빛나는 흔적들을 뒤로하고
막연하게 미뤄놓은
인생의 대미를 고향에서 장식하고파
해 질 녁 안식처로
느지막에 찾아온 야월 솜리
생가의 무너져내리는 돌담은
담쟁이 넝쿨이 칭칭 휘감아 감싸 안고
앞마당 대추나무 아래는
대추가 떨어져 수북하게 쌓여만 가고
한겨울 추위를 녹여주는 붉은 동백은
고요히 꽃을 피워 미소로 반겨주면서
식지 않은 온정으로 따뜻게 품을 내주고
곡간 바구니 속에 담겨있는
영근 씨앗들은 이제나저제나
텃밭에 뿌리내리고 싹틔울 날만을
기다리며 꿈틀거리고
저녁밥을 지으러 불을 지피시다가도
동네일에는 나무꼬챙이 들고 앞장서 나서시던
여장부 어머니들에 대한 기억의 잔상이
밤의 불꽃처럼 되살아나고
어둠을 밝혀주는 호롱불을 머리맡에 두고
이불을 덮고 자장가 들려주시던 부모님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이 초가삼간은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내 정든 모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