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정택근(鄭澤根)

화가 정택근은 1954년 영광 출신으로  타이뻬이 유학을 거쳐 벨기에 브르셀 엘그 미술대학을 졸업했으며, 승대장 서화연구소와 연진 미술원을 수료하고 한국 전통미술대전 특선을 비롯한 각종 수상과, 벨기에 브르셀 미술회관에서 개인전 등을 성황리에 치렀던 중견 작가이다. 현재는 영광 불갑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후학지도와 창작에 열중하고 있다.



오늘 찾아가는 사람은 화가 정택근씨다. 내가 영광 땅에서 반 백년을 살아오며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곳, 양지바르고 어머니의 품 같은 집터가 임수의 자세로 떡 버티고 앉아 있는 불갑저수지 상류의 전촌마을이 그가 사는 곳이다. 수변공원을 휘돌아 저 건너편 물안개가 어울리는 풍경 속에 자기와 닮은 집을 짓고 속세를 떠난 듯 만 듯 제자들을 가르치며 자신을 깨달아 가고 있는 조용한 성품은 주위의 풍경과 별반 다름이 없을 터인데, 이런 곳을 휘적휘적 찾아드는 내 발걸음 소리가 유난히 크게 귓전에 파고 듬은 괜한 느낌만은 아닌 듯도 싶다.


 


육중한 나무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느껴지는 화실 특유의 냄새는 오히려 기분을 좋게 한다. 그리고 늘어진 화구와 작업실의 분위기 또한 나의 내면에 잠재한 열정의 기운을 일깨워 오히려 내 창작열을 자극한다.


 


벨기에 브르셀 엘그미술대학을 졸업하고 귀향하여 예술문화의 불모지 영광에 민예총을 세우고 결속을 위해 최선을 다하던 그의 과거에서 진한 고향애(故鄕愛)를 알 수가 있고, 서양화와 한국화의 경계를 단지 표현의 방법으로 받아들이는 그의 예술영역은 일반인이 선뜻 이해하기에는 조금은 난해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내리는 예술의 정의는 명료하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의 개념, 혹은 예술의 정의 대해서 많은 논의가 있어 왔다. 일반적으로 예술이라 할 때 이 낱말은 예술 일체를 가리킨다. 곧 그것은 회화, 조각, 건축, 도자기, 금은세공, 디자인, 음악, 미술, 시, 소설, 희곡, 영화 등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러한 고전적 견해만이 예술의 유형인가? 예술은 광의의 의미, 즉 『느껴질 수 있는 것 일체』라는 의미로서 해석하고 싶다. 한정적 의미와 광의적 의미 양자는 오늘날 유행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즉 『모든 예술은 인간 감정을 표현하는 지각적 형식들을 창조한다.』 이러한 정의는 몇 개의 교활한 낱말들을 함유한다. 이를테면 창조, 형식, 표현, 감정 같은 말들이다.


 


무엇이 예술인가에 대한 견해는 문학에서의 백지에 인쇄된 검은 문자, 회화에서의 천이나 종이 위에 어떤 의미로 나열된 물감의 색체들, 음악에서 귀로 들리는 음조들, 그 자체들을 예술로 보지는 않는다. 삶의 총체적인 것, 이것들이 우리에게 나타내는 기이한, 혹은 심미적 현상, 그러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현상에서 경이를 발견하고 높은 경지로 표현된 가치 있는 작품이나 그 예술적 업적을 감상하는 것, 즉 창작자의 성공적인 표현물과 감상자 사이에 관계하는 삼위현상관계(三位現象關係)를 예술이라 여기고 싶다.”


 


차를 따르며 조심스럽게 꺼내는 서두는 예술인의 자세다. 노력은 하지 않고 멋만 아는 예인은 많지만 정말 자신의 향상을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는 예인은 정작 드문 것이 현실이고 보면 옳은 얘기다. 사실 내가 고향에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 좁은 지역에서 몇 안 되는 창작인 끼리 서로 감싸고 격려하면서 문화의 암흑기라 칭하는 요즘의 현실을 헤쳐 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기만 잘난 맛에 빠져 주위를 인정치 않는 소견은 오히려 침체되는 지역문화에 찬물까지 끼얹고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노력도 없고 실력도 없으면서 대우는 받고 싶고, 다른 사람이 조금이라도 인정을 받는 것 같으면 어떻게든 깎아 내려야 적성이 풀리는 소인배적 창작인은 오히려 지역에 분열과 불신만 조작하고 만다. 그래서 정택근씨는 실력 없이 대우만을 바라는 예인들에게 자질향상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기를 경고한다. 실력 없는 대우는 없기 때문이다.


 


정택근씨가 손대는 장르는 실로 다양하다. 서예, 수묵화, 남종화, 수채화, 유화,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섭렵치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앞으로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고향에서 개인전을 장르별로 열어 보고 싶은 소망이 있다. 물론 조그만 전시관이라도 내 지역에 들어서고 나서의 일이다.


 


그의 작품세계를 잠시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금새 들어난다. 우리가 통념적으로 구분 지어놓은 영역이 없다는 것이다. 그림은 화가의 표현 자체이지 영역을 구분지어서 꼭 장르별로 가는 것이 아니라는 지론이다. 그래서 그는 수묵화에서 수채화, 유화의 영역까지 자유롭게 드나든다. 우리나라에서 남종화의 산실로 알려진 연진회에서의 수업과, 벨기에 브르셀 유학에서의 공부는 전혀 다른 두 영역의 만남을 예고한 것인지도 모른다.


 


정택근씨의 나서지 않는 성격과 겸손은 오히려 은둔을 생각하게도 하지만, 그래도 그가 있어 후학들은 길을 찾고 영광은 결코 메마르지 않을 것이라 여겨진다. /곽일순 프리랜서 


 




        


 십군자수묵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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