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이른 봄날 아침에-
강 구 현





3개월 정진 마치고 운수행각(雲水行脚) 떠나는 수좌(首座)의 발걸음은 너무 가볍고 홀가분하기만 하네.


마음이 날아갈 것 같네.





문 밖 감나무 마른 가지 위에서 참새 몇 마리가 재잘대며 아침 햇살을 토(吐)해내고 있네.


그 소리들은 결코 무겁지 않은 법어(法語)처럼 들리네.


하찮은 육신이라지만 너무 혹사시키진 마시게.




내 어이 도(道)를 알겠는가?


쇠똥 불 헤치며 감자 구워먹는 맛, 그 거만 알면 되지.





쇠똥 불은 뇌리(腦裏) 속에 아련하고 감자 맛은 혀끝에 감도는데, 어제는 하루 종일 백매(白梅)가 천지간에 흩날리더니 오늘은 또 무순 꽃이 지려는지....?


계절은 봄인데 날씨는 아직도 겨울이구만.


3월에 내리는 서설(瑞雪)이라니......




서두르지 말게나.


세월인들 절기(節氣)를 마다하겠는가?


눈보라 속에서도 마른 가지 물이 오르고 꽃망울이 벙글고 있을 걸세.





계절보다 내 마음이 더 문제인 걸 알겠네.


시심(詩心)은 이상(理想)인데 문장(文章)은 늘 누추한 현실(現實)이니 이 걸 어이할까?





가만히 기다리면 저절로 들어올 것을 서둘러 당겨서 가지려 하니 사단(事端)이 나고 말썽이 생기질 않던가?


마음도 그와 다를 바 없으이.


시심(詩心)이라도 내키는 대로 다 쓰지 마시고 한 조각쯤 하얗게 여백(餘白)으로 남겨둠이 어쩌겠는가?




간밤에 도시의 불 빛 아래서 보았던 매화 한 송이의 꿈이 채 가시지도 않은 이 아침인데 뜨겁지도 않고 다사롭지도 않으며 그저 맑고 투명하기만 한 저 햇살에 눈물이 나는구만.




아름다움의 정점(頂点)에서 흐르는 눈물이니 그만 한 행복이 또 어디 있겠는가?




눈물 속으로 번지는 미소처럼 봄꽃들도 그렇게 소리 없이 피어나겠거니, 봄은 봄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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