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사)한국농업경영인 영광군 연합회장
- 들어가는 말 -
지난 4월2일은 우리나라 농업이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넌 날이라 하겠다. 신자본주의자들의 경제논리로 무장된 세계시장의 선두 주자들과 경쟁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결국 그들의 주장을 다 들어줄 수 밖에 없는 사각 링에서 우리나라는 쌀만은 지켜냈다는 명분 하나로 만신창이가 된 우리의 몸을 가리고 그들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우리의 먹거리와 삶의 기반산업인 농업을 이렇게 초토화시키고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대체 얼마나 되는 것일까? 연일 지상매체를 통해 이 정도면 잘된 통상계약이 아니냐고 외쳐대는 저의는 무엇일까? 마치 아편에 몸이 절어 판단력이 상실된 사람들처럼 그저 FTA만이 우리의 살길이라고 말하는 저들에게 맨몸뚱이로 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이번 FTA협상으로 가장 먼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 생각되는 한우 사육농가들과 양돈 농가들의 예상 피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준비해야 할 대안들을 찾아보고자 한다.
한우산업!! FTA가 발효되기도 전에.......
이번 한미FTA협상 전부터 불어오던 쇠고기 수입문제는 강대국의 횡포가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보여준 가진 자의 폭력이었다. 애초부터 FTA와는 관계없는 광우병 검역문제로 수입이 중단되었던 수입쇠고기 파동은 미국산 수입쇠고기를 즉각 수입하지 않으면 모든 협상을 포기하겠다는 으름장 하나로 이제는 광우병 위험이 가장 많다는 뼈조각이 있는 쇠고기를 FTA협정 인준이 있기도 전에 수입해야할 상황이 되어버렸다. 물건은 개떡같이 만들어 놓고 어거지로 사 먹으라는 저들의 횡포 앞에 찍소리 못하고 당하는 힘없는 국가의 모습 앞에 비통함을 어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거기다 이번 FTA협상을 통해 알려진 협상타결 내용은 더 가관이다.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첫째, 도체와 이분도체 냉장육 등 6개 세번의 수입관세를 현행 40%에서 연차적으로 낮춰 FTA발효 시점에서 15년이 지나면 무관세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합의에는 갑자기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량이 많아지면 세이프가드를 발동시켜 수입을 잠정적으로 중단시킬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했다고 자랑이 대단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쇠고기가 수입되었던 총 수입물량을 보면 2002년에 22만톤 정도의 쇠고기가 국내에 들어온 것이 최대였다. 그런데 세이프가드를 발동할 수 있는 물량은 1년차에는 27만톤, 2년차에는 27만6천톤, 3년차에는 28만2천톤 등 매년 6천톤씩 수입량이 늘어나야 가능하게 되어있다. 우리가 호주산이나 뉴질랜드산등 다른 나라 수입쇠고기를 전혀 수입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세이프가드를 발동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는 사안이다. 따라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세이프가드는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원산지 표시문제는 심각성이 훨씬 더하다. 원산지라는 개념을 이번 협상과정에서 도축장으로 정하다보니 이제 멕시코나 캐나다등 다른 인근 국가에서 소를 키우다가 미국으로 들여와 100일 정도만 키워 미국에서 도축하면 모두 미국산으로 인정해서 수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준 셈이 되었다. 이는 인근 국가가 광우병으로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잘못하면 광우병 소가 국내에 합법적으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을 터준 것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독소 조항으로 드러났다.
냉장 냉동육 관세철폐 2014년으로 못 박아 양돈농가 붕괴 초읽기
한미 FTA체결로 축산분야 중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가 양돈업계일 것이라 한다. 이번 협상 결과를 살펴보면 가장 영향력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냉장육(도체와 이분도체, 전.후지), 냉동육등에 대한 관세를 FTA발효 시점과 상관없이 2014년 1월1일에 폐지하는 것으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돼지고기와 같은 민감 품목의 관세철폐를 발효시점과 관계없이 일정 날짜로 명시한 것은 돼지고기를 포기하고 뭔가를 더 얻으려고 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특히 2004년 11.8%에 해당하던 돼지고기 수입량이 2007년 3월을 기준으로 33.6%까지 올라간 것을 보면 2014년 관세가 철폐된다면 그 수입물량의 증가는 눈에 보듯 뻔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음식점에서는 원산지표시가 되어있지 않아 값싼 미국산 돼지고기가 국산으로 둔갑해서 판매될 가능성이 높아질 거라는 것이다.
우리 축산농가의 현실과 문제점
4월27일에 개최될 한국동물복지협회의 세미나에는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번식용 돼지가 ‘스톨’이라는 폭 60㎝ 길이 200㎝의 금속 틀에서의 평생 삶은 앉았다 일어서는 동작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며 평생 보는 물체는 양돈장의 검은 벽뿐이라는 것이다. 어미돼지가 스톨을 벗어나는 시기는 일년에 단 20일뿐인데 어미돼지의 운동부족을 해소하고 출산에 대비한 다리 힘을 길러주기 위해 만삭이나 포유기 직후 짧은 휴식이 전부라는 것이다. 이렇게 갇혀 사는 어미돼지는 만성우울증이나 의미 없는 행동을 보인다고 적고 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보고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평균 한 마리 돼지 당 축사 이용면적은 0.34평이고 사육두수가 많아 질수록 이용면적은 줄어드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위해 농림부는 단위면적당 사육기준을 비육돈의 경우 0.9㎡를 보장해야 한다고 했지만 동물복지협회에서는 이것도 부족하다고 한다. 또 돼지는 원래 흙을 파는 습성을 가진 동물이기에 갈짚이나 톱밥을 깔아주면 좋은데 대부분의 돈사는 콘크리트 바닥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서 돼지들의 오염과 다리 부상정도가 훨씬 심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었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밀집 사육되기 때문에 돼지들은 여러 질병에 노출될 수 밖에 없고 이를 치료하고 예방하기 위해 쓰이는 항생제는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보고하고 있었다. 항생제의 경우 우리나라는 한해 169만톤의 축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1541톤의 항생제를 쓴 반면 뉴질랜드는 이와 비슷한 132만톤의 축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53톤의 항생제를 썼다 한다. 거의 30배 차이다. 공장식 축산업이 발달한 미국보다 더 많다. 축산물 1톤을 생산하기 위해 들이는 항생제량이 미국은 146g인 반면 한국은 911g 이란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 양돈업이 공장식 축산업으로 점차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농장 규모는 점차 커지고 있어서 2000년에는 1천마리 미만의 소규모 농장이 전체의 90%였지만 2005년에는 76%로 줄어든 반면, 1천마리에서 5천마리 규모의 농장은 9%에서 22%로, 5천마리 이상 규모는 0.5%에서 1.6%로 늘었다. 통계적으로 보면 이미 대한민국은 공장식 축산업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장식축산은 동물들의 생리에 사육조건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육조건에 동물을 맞추는 방식이다. FTA타결을 통해 미국의 공장식 축산물이 몰려올 때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넋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항생제 범벅에다 비복지적인 가축사육으로는 이제 설 땅이 없는 것이다. 그들과 뭔가 다른 경쟁력을 가진 축산물을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우리 앞에 놓인 숙제이다.
‘동물복지’ 관점에서 다시 출발하는 것만이 선진 축산의 대안
그런데 참 감사하고 웃기는 것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앞뒤를 살펴봐도 깜깜하기만 한 축산 농가들에게 반짝이는 탈출구가 보인다면 이는 분명 아직 우리를 저버리지 않고 기회를 주시고자 하는 창조주의 계획이 있다 하겠다. 그것은 바로 ‘동물복지’라는 측면에서의 접근이 세계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고 있는 것이다.
동물복지 문제는 앞으로 농축산물 교역에서 무역장벽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매우 큰 사안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미 유럽연합이 비교역적 관심사항으로 동물복지 표준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기하고 있다. 비록 현재는 미국과 호주의 반발 때문에 본격적인 협상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품질표시제도는 조만간 합의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이는 우리 축산 농가들에게 역발상을 요구하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겠다. 지금껏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시작된 신자본주의적 발상에 근거를 둔 대량밀집 공장형 사육 방법에서 농장규모에 맞는 동물복지형 사육방법으로의 전환이 적극적으로 요구되는 시점이라 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FTA의 한파를 이겨낼 방법이 나올 수 있으며 거꾸로 미국을 상대로 우리 축산물을 당당히 수출할 수 있는 길을 열수 있을 것이다.
현상은 우리를 늘 곤혹스럽게 만들지만 그 현상 속에 숨어있는 원인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다면 그 현상을 뒤집고 내가 그 대안을 주도하는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영광의 축산 농가들의 현명한 그리고 주체적인 결단을 앙망하는 바이다. 또한 지자체에서는 이런 시대적 흐름을 주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여건 마련에 최선을 다해 우리 축산 농가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정책대안 마련에 최선을 다해 줄 것을 간청한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지 않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