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래 정치는 역사를 만들고 역사는 다시 정치를 선도해 왔다. 변치 않는 진리다. 하지만 간혹 이러한 진리는 무너졌고 그럴 때마다 국가는 혼란에 빠졌다. 진시황은 과거의 말씀을 따르지 않겠다는 의미로 분서갱유를 일으켜 상당량의 서책을 불사르고 역사 속 성인의 말씀을 지우려고 시도했다. 과거의 제도를 주장하며 본을 받으려는 행위 자체를 사사로운 학문으로 도당을 이루어 간섭하는 행동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초의 중국 통일이라는 거대한 업적을 이루었지만, 통일을 이룬 불과 11년 만에 삼황오제(三皇五帝)에서 따온 황제라는 명
정치인이 가장 많이 파는 것이 국민이다. 자기 생각을 국민의 뜻이라는 이상한 논리로 국민 앞에 내놓는 게 그들의 비슷한 행태이다. 정작 국민은 정치인 개인의 생각이 왜 국민 전체의 생각이 되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여기서 국민의 생각이란 여론조성의 수단으로 이용이 되고 책임 역시 살며시 그 뒤로 감춰 놓는 방법으로 사용한다. 비겁한 정치의 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국민의 집단지성이라는 강력한 담벼락에 막혀 대부분 빛을 잃는다. 집단지성은 여론이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생성되며 국가의 축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다. 그
조선 시대부터 서해안은 소금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신안과 영광은 전국 소금 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요지였다. 옛날부터 소금은 생명 유지를 위한 가장 중요한 식품으로 인식되었고 화폐 가치를 갖고 유통의 기본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근대기 단편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직업이 소금장수이기도 하다. 산업이 근대화로 접어들면서 귀중했던 소금은 광물로 분류가 되었고 최근에서야 다시 식품의 위치를 되찾았다. 하지만 영예도 순간으로 끝났다. 요즘 불어닥친 태양광으로 인해 염전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다. 없으면 생명을 유지하
설 명절을 지나며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으로의 변환을 기대했던 대선 후보들은 다시 원점의 결과에 실망하는 눈치다. 수 없이 쏟아지는 여론조사는 오차범위 내에서 줄타기를 하며 혼전을 거듭하고 있고 양측 후보 배우자의 행동은 미디어를 도배하고 있다. 60년 겪어온 헌정사에서 이런 대통령 선거는 그야말로 처음이다. 정책과 비전은 네거티브의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고 진흙탕 싸움으로 번져버린 형국이다. 일국의 대표를 선출하는 국가의 경사가 외신까지 넘나드는 부끄러운 양상으로 번지고 있으니 심히 유감이다. 이러한 현상의 단초는 후보자에게서 찾을
요즘 미디어를 대하기가 두렵다. 그야말로 진흙탕이다. 정치를 하려거든 오물에 발을 담그고 시궁창에 엎드릴 각오가 필요하다는 말이 전혀 틀리지 않다. 원인은 단순하다. 후보들의 자질이다. 놈, 놈, 놈이라는 영화의 제목이 생각난다. 다른 점은 이들이 꾸미고 있는 코스프레(코스튬 플레이/costume play)이다. 한 후보는 살아 있는 권력인 현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말로, 한 후보는 다른 사람은 틀렸고 자신만 옳다는 이상한 논리의 자신감으로, 한 후보는 서민의 대표임을 내세우며 탁월한 정치력과 능력을 보유했다는 주장으로 대선에 나서고
며칠 전, 영광군청에서 문자가 한 개 들어왔다. 북문재 누각의 현판 명칭을 결정하는데 따른 선호도를 조사한다는 문자였다. 궁금한 것은 북문을 복원한 것인지 새로운 누각을 지은 것인지이다. 조감도로 봐선 북문을 복원한 형태인데 어디에서도 북문이라는 말은 없다. 만일 북문의 복원이 아니라면 이번 누각 건축은 대부분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기존의 다리를 굳이 없애고 모양만 옛날 방식의 누각으로 만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문을 복원한다는 바람직스러운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을 거 같다. 현재 군에서 ‘북문재 누각 현판’이라는
요즘 같은 시기를 두고 격변의 계절 혹은 혼돈의 시기라고 하나보다. 하룻밤 사이에 일 년 분량의 새로운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거의 야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분관련 소식들이다. 아직 본격적인 대선의 문턱을 밟지도 않은 상태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투쟁이다. 자신들은 부정하겠지만 밖에서 보는 눈은 틀림없는 권력투쟁의 모습이다. 입성을 전제로 한 사후 권력의 향방을 미리 나누려는 과도한 자리매김은 같은 편을 밀어내야 하는 다툼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고 추한 모습으로 미디어를 달구고 있다. 선대총괄을 맡았던 김종인 위원장은 독단으로 후보의 모
때를 안다는 것은 가장 큰 지혜를 의미한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시간이라는 틀의 ‘때’속에서 여행을 한다. 상상으로 미래를 그리던 어린 시절을 지나고 세상을 바꾸고 싶은 야망을 가슴에 품고 살던 젊은 시절도 겪었다. 하지만 중년으로 접어들면 현실적인 시각으로 바뀌고 노년이 되면 가정이라도 지키고 싶은 작은 바람이 생각의 중심에 선다. 정작 길었던 과거의 여정을 힘겹게 걸어온 자신의 모습은 돌아보지 않는다. 자신의 삶에 자신이 없다는 이상한 현상을 자신만 모르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한국인의 보편적인 모습이다. 평생 일
옛날 말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다. 자녀와 부모 관계를 정리해준 말이다. 그나마 춘궁기가 존재하던 시절엔 부모로서의 명이 있었다. 삶의 최대 과제가 먹고 사는 것이었으니 가장의 존재는 중요했고 역할 또한 가정의 중심이었다. 다산으로 인해 형제가 보통 대여섯 이상인 가정에서 끼니를 이어가는 것은 자체가 삶이었고 생활이었다. 먹고 사는 게 일종의 서바이벌 게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가장의 명은 추상이었고 어긴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모든 물자가 풍부해지고 잘 사는 나라로 진입하면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단연 의식주이다. 여기에 색깔로 치면 간색에 해당하는 게 언어와 시각 그리고 맛, 후각 등이다. 이들 중에서 하나만 잃어도 우리는 엄청난 불편은 물론 상실분야의 모든 느낌을 포기하고 살아야 한다. 흔히 농아자라고 하는 사람은 귀가 들리지 않아 언어를 배우지 못한 선천성이 대부분이다. 언어의 중요함은 굳이 거론할 필요가 없다. 가장 빠른 의사소통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렇게 소통의 중심을 이루는 언어가 잘못 전달되었을 경우다. 사안이 중요할수록 피해는 커진다. 언어는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고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프레임을 만들고 그 안에서 보는 만큼 판단하며 살아간다. 한번 설정해버린 틀은 좀처럼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판단과 시각적인 한계를 결정하기도 한다. 그래서 운영자들은 경영 자체를 자신이 짜놓은 틀 안으로 끌어들이고 본인은 슬며시 틀 밖으로 사라지는 수법을 쓰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방법이 더욱 다양하게 사용 되고 있는 곳은 정치판이다. 최근 야당의 대선후보는 최저임금을 없애겠다는 발언을 했다. 흔히 쏟아진 망언 중 하나지만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최저임금을 없애겠다는 발언은 위헌이기에 법조인이 할 공약
사람은 평생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면서 산다. 흔히 말하는 인연이다. 불가에서는 인과 연을 따로 나누어서 의미를 부여하고 설명을 하지만 인간관계라는 뜻을 벗어나진 않는 말이니 굳이 구분할 필요 없이 하나의 단어로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 상호간 신뢰이다. 신뢰는 평소의 언행에서 드러나기 마련인데 말과 행동의 일치는 중요한 판단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주위에서 쉽게 찾아지는 언행의 불일치는 당사자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리고 인격의 범위까지 침범한다. 약속 역시 중요한 믿음의 요소로 작용한다. 약속이라는 의
묘량 삼효리에 다시 축사 문제가 불거졌다. 몇 년 전, 청정 삼효리에 돈사를 건축하겠다는 일이 있었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 되었고 이웃 대마에 비행장이 들어선다는 계획 역시 대마와 이곳 주민들의 반대로 없었던 일이 되었다. 그런데 이젠 문화역사마을로 지정된 효동에 축사를 짓겠다는 사업계획이 제출되었고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1차 심의는 주민들의 반대로 보류가 되었지만 12월에 재심의를 한다는 소식이다. 내가 이곳 효동에 자리를 잡고 들어온 게 5년이 막 넘었다. 조용하고 공기 맑은 청정지역을 찾아 거주 겸해서 작업실을 옮긴 것이다
요즘 중앙정치를 말하고 싶지 않은 게 국민 대다수의 마음일 것이다. 여야가 모두 도를 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야당은 억지의 도를 넘고 있다. 여기에 기존의 검찰과 언론이 번외 세력으로 굳건히 받쳐주고 있는 양상은 안정감 있는 트라이포드의 모습이다. 소위 단독까지 달고 연일 터져 나오는 뉴스는 과장 혹은 가짜 뉴스까지 비빔밥이다. 야권의 대선 후보자는 자연현상인 무지개까지 동원해가며 종교성 짙은 찬양을 하고 여권주자는 발언의 일부를 잘라 왜곡된 폄훼를 하고 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의 사진까지 확인하지 않고 후보자의 부인으로 내보내
주위를 둘러보면 자신을 부정하며 사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이들의 특징은 삶 중심에 자기가 없다. 특히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각종 인생 세탁은 많은 양상으로 나타난다. 가장 흔하게 알려지는 게 학력위조와 각종 논문 카피다. 알지 못하는 사람을 판단하는 방법은 겉으로 드러난 스펙을 살피는 방법이 가장 쉽다. 그래서 취직의 요건이 이력서다. 하지만 거짓으로 적은 경력은 누군가를 속이는 일이다. 이러한 행위에는 자신을 버려야 하는 양심의 문제가 따른다. 결코 정의롭지 못한 행위이지만 주위에서 가장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최근 대통령의 부
사진을 배우던 지인 중에 자신에게 기본을 가르쳐주었던 선생을 폄하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이미 선생의 수준을 넘어선 지인은 기초를 가르쳐주었던 최초의 선생을 “그것도 작품이냐”라는 말로 평가를 했다.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드러나는 건 사실이 아니라 인품이다. 자신이 성공한 학자가 되었어도 초등학교에서 기본을 가르쳐주었던 선생님이 있었다. 배움에는 순서가 있는 것이기에 거쳐 가는 과정이 있으며 이러한 과정을 채워주는 선생은 무척 중요하다. 선조들은 한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으로 모셨다. 배움에는 대부분 ‘청출어람’의 법칙이 작
며칠 전에 층간소음 다툼으로 인한 살인사건이 있었다. 자그마치 4명의 사상자를 낸 이번 사건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아파트 문화의 독특한 현상을 보여주었다. 주거지가 일반주택에서 거대한 고층의 아파트로 옮겨가면서 불거지는 문제가 층간소음만은 아니다. 우리 전통생활이 흙을 밟으며 농경을 하던 것이었다면 급속한 산업화로 이어지는 현재는 고층으로 올라가는 콘크리트 문화로 치닫고 있다. 사람의 머리 위에 그리고 또 그 머리 위에 거주하는 복층의 이상함은 아무도 생각하지 않으며 느낌 역시 별도로 갖지 않는다. 이젠 주택문화의 중심으로 자리를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는 여정은 다사다난하다. 특히 기성세대와 현재의 MZ세대의 괴리는 크다. 경험이 다르니 생각도 다르고 사는 방법 또한 다르다. 각종 사안에 대한 판단의 괴리는 그래서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동 시대의 사건 사고를 공유하며 살아도 지구상에는 80억 개의 각각 개성과 생각이 존재한다. 문제는 이렇게 판이하게 다른 개개인의 생각과 판단 혹은 사유의 능력이 아니라 자아의 상실이다. 스스로의 인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현실의 상황에 자아를 팔고 있다. 눈앞의 상황에 좌절하고 실망하며 때로는 분노한다. 여기에
민주당 대선후보를 결정하는 짧다면 짧은 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이재명 후보가 우리 지역 인물 이낙연 후보에게 신승을 거두며 후보로 당선 되었다. 물론 이 후보의 일부 지지자들은 서운함을 뒤풀이 어필로 호소하기도 했지만 원팀이라는 최선의 방향을 선택했다. 우리가 유일하게 사는 방법은 어차피 하나로 뭉치는 것 이외에는 없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이러한 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조금은 냉정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정권쟁취라는 정계의 화두는 과거부터 내부적인 권모술수를 많이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전에도
요즘 정치와 언론이 적당히 버무려지면서 큰 혼란을 만들어내고 있다. 여야의 정쟁에 심판을 맡아야 할 모든 커뮤니티는 자신들만의 이권을 좇아서 기울어진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여기엔 이성도 합리도 없으며 영역논리를 바닥에 깐 편협만 있을 뿐이다. 편견도 지독한 편견이다. 국가의 위상은 물론 국익 위에 존재하는 비논리적 판단은 때로 국제적인 창피를 사기도 한다. 문제는 이들의 가슴엔 양심과 체면이 없다는 것이다. 최근 UN에서 문 대통령과 BTS를 초빙했다. 대부분의 메이저 언론은 대통령이 인기몰이를 위해 BTS를 데리고 갔다고 했다.